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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과 '검은 양'

물조아 2014. 1. 21. 11:18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입력시간 : 2014.01.20 21:00:35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에 세상으로부터 숨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다. '쿨'(cool)하지도 않고 '스마트'(smart)하지도 않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는 현상이다.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을 갖고, 때깔 나는 차를 뽑고, 주말이면 야외로 다니거나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들은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무언가 해야 할 것도 없이 빈둥빈둥 대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조한다.

 

언제부터 '잉여사회', '잉여인간'과 같은 자조적인 낱말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주목한다. 우리에 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로부터 완전히 배척되지도 않은 잉여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사회 안에서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흘깃거리기도 하고 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상인이기에는 너무 작거나 너무 크고, 너무 뚱뚱하거나 너무 말랐고, 너무 무능력하거나 너무 능력이 있고, 너무 무개성이거나 너무 개성이 강하다. 아무튼, 그들은 정상이 아니다. 그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남아도는 잉여인간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정책의 목표로 내세웠다니 우리 주위의 잉여인간들도 이제는 다 사라질까? 정상인들은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잉여인간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은 이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잉여 짓'을 마다치 않는다. 이 시대를 주도하고 이 사회를 주물럭거리는 정상인들은 전문가라는 명찰을 달고 돈놀이와 숫자놀음을 하는데, 이들은 언뜻 돈하고는 상관없다는 듯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한다. 이들은 물론 정상인들이 자신들로 하여금 커피를 뽑게 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하고, 멋진 디자인을 만들도록 하면서도 그 결실은 혼자 독차지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커피 내리는 일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고, 디자인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이렇게 일은 좋아하지만 단지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인 잉여인간이라고 한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정상인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그들이 행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사람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능력한 것도 아닌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상인이다. 이렇게 표준화된 중간치들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결정한다. 어릴 적부터 정상적인 어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눈치 빠른 사람들, 말 잘 듣고 시험 잘 보는 노하우를 익힌 사람들, 대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귀신같이 잘 쌓는 사람들. 이들이 우리 사회의 꼭대기에 앉아 잉여사회의 문제점을 말하면서도 막상 잉여인간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 정상적인 모범생들이다.

 

서양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검은 양'(black sheep)이라고 불렀다. 하얀 양의 털들은 쉽게 염색을 할 수 있어 좋은 가격을 받지만, 검은 양이 섞여 있으면 전체 양모의 품질을 떨어뜨렸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양은 양모 생산에 맞춰져 있는 사육자와 목동들에게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특정한 집단에 지배적인 가치와 규칙에 부응하지 못하는 특성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검은 양'으로 불렸다. 이들은 대개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국외자이거나 문제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잉여인간을 만들어내는 지배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표준화된 중간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행동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려 그 어떤 '다름'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과연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검은 양을 더 키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