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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선생님과 함께 하는 남한산성 인문학 기행 20130712~^^*

물조아 2013. 7. 13. 11:24

작년 6월경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속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남한산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무작정 남문에서 수어장대, 서문 그리고 연주봉 옹성까지 걸어가서 그 곳에서 한강 하구로 지는 해와 함께 서울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올해는 북러닝 인문학 기행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어 / 두 번째 남한산성에서 특히 김훈 선생님을 만나서 강연을 듣고 그리고 남한산성을 함께 돌면서 김훈 선생님이 말해주는 남한산성에 대한 조선역사의 치욕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굽이굽이 남문(인조가 청에 쫓기어 어가행렬을 타고 후퇴한 곳)으로 들어갔다. 굵은 빗줄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마치 그때의 통한, 뼈아픈 이야기를 뱉어내는 듯하였다.

 

행궁의 장승당에 모두 모여 앉아서 처마 끝으로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세고 있으니, 꾸밈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수수한 모습의 김훈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병자호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청나라에 백기를 들기까지 풍전등화의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주장에 인조의 갈등과 번민 그리고 고통 받는 남한산성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의 치욕스런 역사의 한 단면을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슬프게 슬프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장소를 수어장대(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로 옮겨서 수어장대에서의 역할과 사연을 들었는데 안개가 많은 것을 그때의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안개로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연유인지 전후방으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서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훈 선생님은 서문은 치욕의 문이라고도 했다. 인조가 청의 침략에 피해 남한산성에 들어 올 때는 어가를 타고 남문 즉 정문으로 들어 왔지만, 청에게 항복하고 남한산성을 나올 때는 굴욕의 서문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문의 석축들은 그때의 석축으로 김훈 선생님은 석축을 툭툭 치면서 “내가 남한산성 서문에 와서 이렇게 석축을 툭툭 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라고 하였는데, 김훈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부터 남한산성에 대한 책을 꼭 집필하려고 하였던 결연한 마음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온 몸에 내리 받으면서 북문으로 하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