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여행(行)

울산 충의사(忠義祠: 울산시 중구 학산동 44-7)

물조아 2012. 7. 4. 13:39

충의사는 임진, 정유재란 중 왜군을 격파한 울산 의사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5년(1592년) 4월 14일 왜군이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이어 울산을 점령하였다.

 

왜적의 만행에 비분강개한 울산지방의 의사들은 분연히 창의하여 신라 때의 기박산성에서 4월23일에 결진하여 편대하였고 이어 경주 지방의 의병과 신흥사 승군도 찾아와 합진하였다.

 

 

 

 

▲▲▲ 홍살문 능, 원, 궁전, 묘 등의 입구에 세워진 붉은 칠을 한 문이다. 창의문은 충과 의가 영세에 빛나고 있는 곳으로 가는 문이다.

 

홍살문 아래로 들어갈 때는 조심스럽고 엄숙한 생각만 가지고 들어갔지만~

 

학창시절 울산의 역사를 겉모습만 학습 해온 탓인지, 왜? 울산에는 울산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없었는가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그 문을 나올 때는 과거 치욕의 7년의 임진왜란 동안 그래도 죽음을 무릅쓰고 울산을 지킨 의사가 있었다는 생각에 나름은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 전시관 울산 도산성 전투: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당시 울산의 도산성(현재의 학성공원)을 중심으로 조, 명 연합군과 왜군이 13일 동안 펼쳤던 대규모 전투(1597년 12월)로

 

조, 명 연합군이 성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왜군 가토 기요마사 부대를 완전히 포위하여 맹공을 퍼부어 큰 피해를 주었지만,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왜군의 구원병이 육로와 해안에 이르자 포위를 풀고 경주로 후퇴하였다.

 

 

 

 

▲▲▲ 울산시는 선조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994년 11월에 사당 건립에 착수하여 2000년 7월에 완공하여 충의사라 이름 하였다. 본전에는 의사 230분의 위패와 이름 없는 의사들 함께 봉안하였다. 매년 춘, 추에 정성을 다하여 제향을 올린다.

 

 

 

 

 

 

 

 

 

 

▲▲▲ 울산은 왜란을 극복하는 동안 수많은 의사들이 희생되었고 강토는 황폐화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는 울산의사들의 전공을 치하하여 선무원종공신으로 책훈하고 간난을 이겨낸 군민을 위해 울산군을 언양현과 합하여 울산도호부로 승격하였다.

 

동쪽으로는 무룡산, 남쪽으로는 울산만, 서쪽으로는 문수산을 바라보면서~

 

임진왜란 당시 울산 지역에서는 열악한 군사 장비 창과 칼 그리고 화살을 들고, 총으로 무장한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절규하던 많은 의사들의 함성을~

 

권력을 장악한 위인들의 당파 싸움으로 유비무환을 잊어버린 피 맺힌 아픔을, 한이 맺힌 원통함 들이 역사라는 시간 속에 잠들어 버린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