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환·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의사
신들린 듯한 손놀림으로 환부를 도려내고 상처를 꿰맨다
내 손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의사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란 말이 새삼 다가왔다
"외과 의사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다. 함부로 하지 마라."
30여 년 전 흉부외과 선택을 결심한 나에게 선배가 처음으로 준 가르침이었다. 당시 나는 흉부외과 전공의를 지망한 의과대학 4학년 학생으로 흉부외과 야유회에 참석 중이었다. 고기를 굽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는데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어떻게든 불을 붙여보려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자, 3년 선배인 전공의 선생이 나를 보고 했던 말이다.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수술 부위와 장기를 부드럽고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여성스러운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대 졸업 후에도 인턴,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밟으며 약 7~8년의 세월을 보내야 하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연마를 요구한다.
수술을 할 때는 '2인3각' 달리기를 할 때처럼 오른손과 왼손의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의 궁합을 맞추기 위해 일반인들에겐 기이하게 보이는 훈련도 한다.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왼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도 한다. 가위나 수술용 겸자와 같은 도구가 손에 익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 기구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길을 걸을 때 의사 가운의 단춧구멍에 실을 넣고 양손으로 묶는 연습을 했다. 방석이나 베개가 온통 꿰맨 자국으로 가득하도록 바느질 연습도 했다. 정말 손을 한시도 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처음 외과 전공의가 된 뒤 스승이 하는 수술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 선배의 손이 '신의 손'처럼 느껴졌다. 신들린 듯한 손놀림으로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며 환부를 도려내고, 다친 부위를 꿰매냈다. 내 손이 과연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침내 내게도 '초(初) 집도'의 기회가 주어졌다. 첫 수술이다. 환자는 20대 남자 맹장염 환자였다. 당시 30년 넘게 수술장을 지키셨던 외과 과장님이 보조를 해 주셨다. 숙련된 외과 의사라면 15분~20분밖에 걸리지 않을 수술을 땀을 뻘뻘 흘리며 1시간 정도 만에 끝냈다. 수술장갑 안의 손은 땀에 젖었다. 그 손을 보며 '너도 이제 의사 손이다'고 혼자 생각했다.
외과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수술로 살렸을 때의 그 보람과 성취감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만성 폐말기질환으로 폐가 망가져 침대에 눕지도 못하는 환자가 왔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이었다. 몸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그 손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내 손으로 그 손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했다. 폐 이식 수술이 성공하자, 그의 온몸에 산소가 공급되면서 까맣던 손끝이 뽀얗게 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50대 중반의 나이는 외과 의사에게는 황금 같은 시기라고 한다. 지혜와 경험과 기술이 최고조에 오르는 시기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손에서 발휘된다. 아직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이 된다. 수술 방법, 수술 범위, 치료 방침 등이 최선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내 손을 본다. 그렇게 7000명을 수술했다.
환자가 스승이며,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한다. 이것이 손 하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외과 의사가 평생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나뭇가지도 잡지 못하게 했던 그 선배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외과 의사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다. 함부로 하지 마라."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손을 아끼라는 뜻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뭇가지도 조심해 잡을 만큼, 사람 생명을 존중하고 환자를 받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손은 쓰기에 따라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는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성숙환·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의사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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