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9시 뉴스를 기다리며/신은경/김영사

물조아 2009. 12. 14. 03:57

9시 뉴스를 기다리며/신은경/김영사 ‘93.2 국내 최초의 여성앵커, 신은경 이야기


1. 9시 뉴스 하는 여자

입사시험, 대학 4학년 때였다. ~ 벌써 11월이었다. 같은과 친구와 함께 원서를 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긴 파마머리를 자른 것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단정한 머리를 만들고 싶었다.


드디어 아나운서가 되었다. 7백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뽑힌 7명의 KBS 공사 8기 아나운서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아나운서 시험에 붙었을 때만큼 기뻤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오늘 저녁부터 9시 뉴스를 해야겠습니다.” 9시 뉴스의 전임 여성 진행자가 결혼을 앞두고 회사에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공백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첫날 뉴스가 끝났을 때 입은 옷은 온통 땀으로 젖었다. 얼마나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었던지 뒷목과 어깨, 등줄기가 모두 뻐근했다. 보도국으로서는 큰 모험이었고, 나로서는 큰 행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날부터 신은경은 ‘KBS 9시 뉴스 하는 여자’가 되었다.


무서운 국어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던 고모부를 찾아가 고등학교 학생의 신분에 넘치는 국문법을 낱낱이 배워왔던 기억도 있다. 고모부가 당시 이름 날리던 국어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나의 못된 성격 한 가지를 실토해야겠다. 나는 무슨 일에 빠져들면 그것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그 일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떨어지는 것도 경험이니까.’


모두 다 잘 알고 있겠거니, 모두 다 내게 호의를 갖고 있겠거니 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필요한 것은 알리고 설명해 둘 필요가 있었고, 내 계산기와 동료들의 계산기가 서로 작동이 다르다면 내가 그들의 계산기에 맞춰 노력할 필요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화를 내지 않으시지요? 화가 나지도 않으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또 다시 평화로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왜 나라고 화가 나지 않겠니? 물론 화가 나지. 하지만 마음속에서 생기는 성냄을 겉으로 표시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40년이 걸렸단다. 이제 마음속에서 조차 화를 내지 않으려면 앞으로 또 40년은 걸리겠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세상일은 참으로 공평해서 무엇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순리대로 또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무엇이 완성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다.


서른을 넘기며 깨달은 몇 가지 단맛은 내게 여유와 평화를 주었다. 그래서 이제 또 마흔을 넘기면서는 더 큰 몇 가지를 얻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더 큰 지혜와 더 큰 진리를 터득하면 또 한 번 평화로운 미소를 배울 것이다. 그 때 가서는 또 다른 다음의 도약을 기다리며 가슴셀레일 것이 분명하다.


2. 방송인이 되고 싶은 후배에게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하건대 방송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은 가슴으로, 그리고 머리로 하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냉정한 머리와 상식적이고 건강한 판단을 하는 가슴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입은 오히려 침묵하느니만 못 한다.


단편적이나마 그때그때 기록해 둔 메모나 스크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서로 연관을 가지면서 그 중요성이 커져 갔다. 여러 권의 노트는 이제 펼쳐 보기만 해도 흐뭇한 보물이 되었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정보 수집의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KBS 9시 뉴스 시작부분의 타이틀을 유심히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East), 서(West), 남(South), 북(North)의 머리글자인 E, W, S, N이 지구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가 각자 순서를 바꿔 다시 자리를 잡는다. 그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단어가 바로 뉴스(NEWS)이다.


뉴스란 글자 그대로 가장 최근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니 말이다. ~ 프리랜스란 ‘어디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비전속의’란 뜻으로 원래 작가나 배우에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의상과 분장은 어떻게? TV 분장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분장이란 단지 예뻐 보이기 위한 여성들의 ‘화장’과는 달라 카메라라는 기계에 적합하도록 적응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남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방송국 보도차량으로 매일 밤 퇴근을 하다가 갑자기 낮 근무로 바뀌어 버스를 타게 되자 엄마는 자동차 한 대를 선뜻 사 주셨다. 어느 날 맘만 내키면 차 한대 턱 살 수 있는 부유한 집은 아니었지만,


동등한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여성이 열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하는 수 없이 여성이 좀더 뛰어난 능력을 먼저 갖추는 수밖에 없다. 사회가 변하길 기다리는 시간보다 내가 변신을 꾀하는 시간이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3. 신은경의 세상이야기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은 무엇일까? 올바른 길을 열어 주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타 연주자 나르시소 예페즈(Nar-ciso Yepes)의 예를 들면서 얘기를 맺을까 한다.


그가 유명한 영화 ‘금지된 장난’의 음악을 만들었던 젊은 시절의 일이다. 1952년, 24세의 예페즈는 파리의 무대에 데뷔했다. 그때 연주를 지켜 본 르네 클레망 감독은 무대 뒤로 그를 찾아가 ‘금지된 장난’의 음악을 맡아 줄 것을 간청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는 애송이는 거장 클레망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영화를 먼저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음악은 전적으로 내게 맡겨 주어야 합니다. 또 끝날 때까지 음악은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겠습니다.”


음악을 완성할 때까지 나르시소 예페즈는 영화를 자그마치 33번이나 보았다. 그러나 완성된 음악을 영화에 맞추는 데는 하루 저녁밖에 걸리지 않았다. 새벽녘 작품이 완성되자 클레망은 예페즈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었네!”

 

이렇게 완성된 영화 ‘금지된 장난’, 그리고 기타의 선율이 애잔한 주제곡 ‘로망스’는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슴 깊이 명곡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첫 느낌은 기다리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비결, 그리고 철저한 직업의식이었다.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태어나 그 일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철저하고 완벽하게 프로여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란 남이 주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 만드는 경가 많다. ‘누가 하랬나?’하고 따지고 들 때 모두 대답이 궁색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유는 세상의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 ‘주름’이라는 자연의 흐름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 여인의 얘기를~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안나 마냐니가 사진을 찍는 사진사에게 말했다. “제 주름살 수정하지 마세요. 그거 얻어 가지는 데 꽤 오래 걸렸거든요.”


4. 세계의 여성 앵커

바바라 월터스, 다이언 소여, 카니 정, 제인 폴리, 캐서린 크라이어, 메리 앨리스 월리엄스, 마리아 슈라이버, 안느 생클레르, 크리스틴 오크렌트, 미셸 코타, 클레르 샤잘


카니 정은 “난 어른이라면 별을 좇는 꿈같은 것은 꾸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죠. 그냥 자신의 일을 할 뿐이죠. 아주 잘 말이에요.” 끝. 사진출처: 야후 이미지박스 '10.12.18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