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BOOK] 탐욕이 키워낸‘부자병’치유하셔야죠, 천천히 좀 삽시다

물조아 2009. 11. 28. 06:59

[중앙일보] 어플루엔자. 올리버 제임스 지음 윤정숙 옮김, 알마 568쪽, 2만5000원


어플루엔자(Affluenza). ‘풍요(affluence)’와 ‘유행성 질병(influenza)’을 합해 ‘부자병’이란 뜻으로 만든 조어로 1970년 대 초반에 나온 말이다.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의 탐욕이 만들어낸 질병을 가리키며 영어사전에도 어엿하게 올라있다. ‘소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소비지상주의의 환상을 좇다보면 결국 불행해진다는 게 요지다. 어찌보면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닌데, 영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3년에 걸쳐 뉴욕·싱가포르·모스크바 등 20여 개국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자병의 실태와 해법을 풍부한 사례로 풀어냈다.


저자는 어플루엔자를 ‘이기적 자본주의’가, 스스로 양산한 ‘시장형 인간’과 만나 만들어진 질병이라고 본다. 그가 말하는 이기적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이다. 기업의 성공을 주식시장의 주가로 판단하고, 공공서비스를 모두 민영화하며, 기업 활동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부자에 대한 과세를 제한하는 게 그 내용이다. 이기적 자본주의야말로 소비와 시장의 힘이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주범이란다. 시장형 인간은 시장에서 자신을 더 비싸게 팔기 위해 몸값을 높이려 안달하는 요즘 우리들이다.


어플루엔자 백신, 즉 부자병 대처법은 가치관과 생활태도의 작은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미친 것은 사회이지, 그 광기의 결과로 고통을 느끼는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취객으로 등장하는 개그맨 박성광의 말처럼 “국가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하고 자기 길을 가자는 것이다.


누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지에 관심을 쏟지 말고, 요즘 사회에서 덕목으로 추켜세우는 ‘성실성· 활동성· 위트’의 함정에도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를테면 위트는 주변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대신, 그저 순간을 쉽게 넘기도록 하는 병폐가 있단다. 한마디로 이 각박한 세상, 브레이크를 밟으며 좀 천천히 가자는 내용인데 그런 주장을 담은 책치곤 너무 두껍다는 게 아이러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례를 담다 보니 책도 ‘부자병’에 걸렸다. 책을 읽으면서 기시감(旣視感)과 싸워야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현대자본주의의 소비병은 일찍이 상층계급의 과시적 소비 문제를 지적한 경제학자 베블런 등 여럿이 지적한 바 있다.


서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