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내편으로 만드는법] 인간관계와 기대치 위반 효과 양광모 휴먼네트워크연구소(HNI) 소장 [머니투데이]
몇 개월 전 아내와 함께 영화 '박쥐'를 관람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극과 극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상반된 평가에 대해 내 눈으로 직접 작품성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박쥐'에 대한 평가는 외국에서도 확연하게 나눠지고 있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긍정적인 평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박쥐'는 박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풍부하며, 가장 파격적이며, 가장 성숙한 작품이며 칸에 모인 평론가들이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타임)
"웃기지만 거칠고,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생경하고 얽매인데 없는 UFO같은 작품" (르 파리지엥)
"박쥐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의 시적인 힘을 갖고 있다" ('스크린'의 다시 파켓)
이렇게 극찬에 가까운 평가도 많은 반면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와 혹평의 목소리도 많이 들려온다.
"방자하고 멍청하며 우스꽝스러운 괴기주의의 기념비적인 작품" (르몽드)
"아주 빨리, 너무 빨리 모든게 망쳐지고 만다. 그리고는 이 비천함에 대한 자기만족적인 묘사에서 갑자기 튀어 보이려는 양식과 과시적인 거창함, 그리고 불변의 거만함이 다시 표면위로 떠오른다" (레 인록)
"'올드 보이', '복수는 나의 것' 같은 멋진 작품을 만든 감독으로부터 나온 놀랍도록 뉘앙스가 부족한 작품" (버라이어티 칸 데일리의 데릭 엘리)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며 나는 '박쥐'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추고 집근처에 있는 롯데 시네마로 몸을 향했다. 2시간여의 상영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내에게 영화를 본 느낌을 슬쩍 물어보았다. "어땠어? 재밌었어?" 아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뭐 별 내용없네. 기대했던 것보다 시시해" 아내가 나의 생각을 물어본다. "당신은 어땠어?"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스토리와 연출에 충격받았어.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재능이 부럽게까지 느껴지네. 그렇지만 예술성과는 별개로 대중적인 여운이 남는 작품은 아닌 것 같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할 명작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 아무튼 기대했던 수준보다는 좋았어. 사람들의 엇갈린 평가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기대치를 많이 낮춰서 그런 모양이야."
심리학 용어에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 Effect)'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한 평가가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매우 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기대치를 초과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호감, 감동,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기대치에 미흡하거나 기대치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면 반감, 실망,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예롤 들면 다음과 같다. 평소에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집안청소나 설거지를 도와주면 큰 호감과 감동을 느끼지만, 평소에 집안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사소한 심부름을 거절하면 더 큰 반감과 실망을 느끼게 된다.
공부를 못하던 아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높은 성적을 받으면 큰 기쁨을 느끼지만,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예상치 못했던 낮은 점수를 받으면 큰 실망을 느낀다. 이러한 기대치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기대감을 형성하는 것 못지않게 기대치를 올바로 관리해야 한다.
첫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가 형성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대인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심리적 계약이 체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적 계약이 준수되지 못하면 실망감이 형성되고 인간관계는 더 이상 발전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호언장담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입밖에 꺼내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때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갖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간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하거나,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망을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은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기대와 반대되는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려면 사람들에게 지나친 기대치를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베풀 때는 Give & Forget의 자세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했던 것을 못받을 때 큰 실망과 원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회에서 흔히 하는 말에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지나친 기대치는 충족되기도 어렵지만 기대치위반 효과에 의해 더욱 큰 반감, 실망, 부정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심리적 계약이 깨지고 인간관계는 약화, 단절된다. 내가 영화 '박쥐'를 보고 나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사전에 기대치를 낮게 잡았기 때문이다. 만약, 큰 기대치를 갖고 영화를 봤다면 실망과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인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 기대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자기이행적 예연의 효과에 의해 내가 기대하는 대로 상대방이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나친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다. 너무 많이, 너무 높게, 너무 빠르게 기대하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와 잘못에도 더 큰 실망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조금만 기대치를 낮게 잡으면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되고 좋은 관계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 가족, 친구, 직장사람들을 떠올려보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앞으로 어떻게 기대치를 낮추면 좋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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