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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안 했다고 미디어법 무효화라니 … 국회 스스로 입법권 부정”

물조아 2009. 6. 22. 06:16

[중앙일보]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의 쓴소리, “밥 그릇 뺏길 수 있으니 여론조사 기관 제자리 두라” 국회의원들에게 일침


지난 3월 여야 원내대표들은 “미디어법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100일간 여론 수렴을 거친 뒤 6월 국회에서 표결 처리한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100일간의 활동을 마쳤지만 민주당은 ‘국민 여론조사’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합의 무효를 선언해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40·사진) 대표가 21일 “여론조사 채택 문제로 미디어법 개정을 무효화하려는 것은 국회의원 스스로 대의민주주와 입법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칼럼을 회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는 ‘미디어법과 여론조사, 대의 민주주의’란 칼럼 말미에 “의원 여러분, 여론조사기관을 그냥 제자리에 두시는 게 어떠하실지요. 여론조사기관이 입법 기관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말이죠. 밥그릇 뺏기는 겁니다”고 쓴소리도 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추천의 미디어위 강상현(연세대 교수) 공동위원장의 대학원 제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미디어법 개정에 대해 여론조사의 과도한 개입이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 한나라당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편견을 갖고 오해할까봐 미리 말씀드린다”며 “제 주장은 여론조사 종사자로서 드리는 고해성사”라고 밝혔다. 아래는 칼럼 내용 요약.


◆“정책 결정에 여론조사 만능은 위험”=여론조사기관의 입장에서 영향력과 매출이 증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 정책 결정에 여론조사의 개입은 매우 달콤한 제안이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데는 반대한다. 여론조사로 주요 국가 정책을 ‘결정’하자는 여론조사 만능주의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여론조사에 의한 정책 결정이 항상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관련돼서다. 님비현상과 관련해 자기 지역의 화장장 등 혐오시설 유치에 대해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공요금 인상이나 군 복무기간 단축, 사형제·간통제 폐지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또 정책 결정에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한 경우는 국민 의견보다 전문가 의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일반 여론조사로 결정했다면 황 교수는 이미 서울대에 복직해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했을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 문제도 전문가 위원회가 결론을 못 내렸다고 구체적인 내용도 잘 모르는 일반 국민 1000명에게 이분법적으로 찬반 의견을 물어 미디어법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디어법, 국회의원 스스로 결정해야”=전문가 위원회가 구성됐을 때에도 대의민주주의 회의론이 나왔다. 이제 위원회도 모자라 결국 국민 여론으로 미디어법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면 국회의원 스스로 대의민주주의와 입법부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결정적 요인으로 활용될 수 있고 적정 수준으로 반영될 경우 바람직한 방법이다. 또 선출된 공직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주요 참고 지표로 여론조사가 활용될 수 있지만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 자체를 여론조사로 대신할 수는 없다. 정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