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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묻지마 범죄'…왜?

물조아 2008. 7. 23. 17:34

▲ 지난 달 8일 낮 12시35분쯤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전철역 인근에서 발생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의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칼에 찔려 쓰러진 시민들을 응급조치하고 있다./조선DB

 

최근 국내외에서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낯선 사람의 예기치 못한 폭력에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엔 오후 강원도 동해시청 민원실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공무원 1명이 숨졌다. 지난 4월엔 강원도 양구에서 운동을 하던 여고생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고, 2월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70대 노인의 ‘묻지마 방화’로 전소됐다. 지난해에도 전남 보성군의 ‘노인과 바다’ 사건, 서울 홍익대 앞 ‘택시 납치’ 사건 등이 벌어지는 등 ‘묻지마 범죄’의 심각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살인 통계에서 살해범과 피해자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원한 관계가 전혀 없는 제3자에 대한 살인이 21.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얼굴도 모르는 제3자가 주된 범행 대상자가 된 것이다. 반면 과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친족 간 살인은 18.6%로 줄었다.


살인 동기별로도 우발적 살인이 38.4%로 가장 높았다. 1996년 29.8%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반면 보복성 살인은 11.5%에서 9.0%, 가정 불화가 원인이 된 살인은 10.7%에서 7.4% 등으로 ‘이유 있는’ 살인은 줄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마 범죄는 왜 발생하는 걸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로부터 고립돼 혼자 생활하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의한 극도의 반사회적 범행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 정신장애뿐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 등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분출하는 대상으로 불특정 다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도 묻지마 살인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는데,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연구해보니, 이들의 대부분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마음과마음 병원 강성민 정신과 박사는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이 많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만을 표출할 수 없을 때 묻지마 식으로 다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신의 불만을 다른 사람 또는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에는 각자의 분노를 스스로 삭이기 위해 자살이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표현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자신보다 사회부조리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살인과 같은 형태로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살인마 유영철의 경우도 부자와 기득권을 탓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동해시청 살인 사건에서) 공무원을 살인 대상으로 삼은 것이나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숭례문을 방화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일종의 국가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선진국형 범죄로 볼 수 있다. 용의자가 피해 대상과 무관하고 범행동기조차 뚜렷하지 않아 경찰수사도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박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