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이다. 영화 <색계>에서 이 대장(량차오웨이)은 장치아즈(탕웨이)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다. ‘시간 차이’를 둔 교환 행위인 선물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관계에 비극을 가져온다.
진정 선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교환일까, 데리다는 왜 선물이란 불가능하다고 했을까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은 것은 기원전 700년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아마도 그전부터 선물은 존재했을 것이다. 원시 조상들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코끼리뼈를 조각하고 들꽃을 꺾어 선물하지 않았을까?
곧바로 답례하는 것이 실례인 이유
그런데 선물은 진정 선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교환일까?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질문이냐고? ‘진정한 베풂’은 무엇이든 돌려받겠다는 계산이 깔리지 않은 행위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선물은 진정한 베풂일까, 아니면 교환행위일까?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시작이며, 그것이 거저 주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거지에게 돈을 줄 때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주고받아온 것일까?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의 저자인 덴마크의 과학저술가 토르 뇌레트랜더스는 ‘구두’라는 하나의 제품이라 하더라고 선물과 상품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 판매는 판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거래를 하는 순간 볼일을 다 본 셈이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선물이 오가면, 그들 사이에 남는 것이 있다. 선물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초기’에 그토록 선물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결혼 30년차 부부들이 선물에 그토록 무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물은 관계를 형성한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애초에 선물이란 말 그대로 ‘논리적 모순’이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선물 교환은 교환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 차이를 두고 교환을 하는 행위다. 그래서 베풂의 성격을 담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란 ‘비연속적인 베풂의 행위’인 셈이다.
어느 사회나 받은 선물에 대해 곧바로 답례하는 것은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례’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답례를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교환을 하는데, 그 시간 차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답례를 하면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라는 뜻이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생일에 선물을 했다면, 나는 그 답례를 내 생일 때 받게 된다. 그 사이에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면.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한 달이라는 시간 차이를 둔 것도 그 때문이다. 선물을 받으면 관계가 형성되고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생겨난다. 토르 뇌레트랜더스의 표현대로, 선물은 서로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진 빚은 미래를 공유하고 우리를 한데 묶는다. 전세계적인 스케일에서 선물을 퍼나르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는, 연인들은 그 자리에서 선물을 주고받지 않고 시간 차이를 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시작한다면 꽃, 오래됐다면 가방
연인들이 주고받는 선물에는 특별한 레퍼토리가 존재한다. 어느 온라인 쇼핑몰이 10대부터 50대까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한 결과, 여성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로 1위는 가방, 2위는 보석·액세서리, 3위는 지갑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에는 1위가 가방, 2위가 시계, 3위가 구두라고 대답했다. 그 밖에도 장미꽃, 향수, 화장품, 케이크, 의류, 넥타이, 벨트, CD 등이 인기 있는 선물용 제품들이다. 흥미롭게도 선물용 아이템은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경향이 있다. 연인들끼리 돈을 주고받는다거나, 커피포트나 의자, 전등, 체육복 등을 선물하진 않는다.
왜 연인들의 선물에는 특별한 레퍼토리가 존재할까? 선물이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라면, 두고두고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할 때 선물은 가치를 갖는다. 평소에 자주 보고 심지어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일 때 선물은 빛이 난다. 꽃은 그 자리를 빛내주지만, 가방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다(어버이날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돈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관계 형성에는 관심이 없다. 실용주의 노선이 최고다).
만약 당신이 연인에게 줄 선물로 고민하고 있다면, 꽃과 가방의 의미를 되새겨보시라. 처음 만나는 사이에선 꽃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오래된 연인일수록 실용적인 아이템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면, 이따금 꽃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무 자주가 아니라면 여성도 기뻐할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선물에 대한 반응이 크지 않다. 선물을 받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감동하지 않는 편이란 얘기다. 선물을 고르는 능력 또한 현저히 떨어지며,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을 즐기지도 않는다. 많은 연인들 사이의 불화는 여기서 비롯된다.
여성은 선물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길 원하는데, 남성은 선물에 마음을 담을 줄 모른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한국시리즈 티켓을 선물해주는 것처럼, 남성은 자신의 취미나 기호를 배려한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여성들은 남성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선물을 통해 읽고 싶어하는데, 남성들은 선물은 중요하지 않으며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대화가 안 될 수밖에.
선물 고르는 과정도 선물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연구해온 많은 과학자들은 선물이 때론 값비싼 불화의 신호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선물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르고 선물을 고르는 취향이 서로 달라 불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선물은 관계 형성을 위해 주고받는 것이기에 잘못된 선물은 관계 형성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선물에 대한 얘기를 평소 자주 주고받으며, 선물을 고르는 과정을 하나의 선물처럼 활용하라고 선물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물을 함께 고르는 과정이 즐거우면 선물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간다. 특히나 상대방의 취향을 선물에 자연스레 담을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반드시 카드는 상의해서 쓰지 말고 깜짝 선물로 줄 것. 마음을 담은 ‘긴 글’로 말이다. 카드를 고르고 쓰는 데에는 상의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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