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소멸-사라지는 것, 그 찰나의 아름다움

물조아 2008. 1. 26. 10:18

지는 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 잠시 멈춰서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은 신성(神聖, divinity)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말씀이다. 노을의 전송 속에 침강하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알맞게 익은 진도 홍주나 한산 소곡주를 국자에 떠내 혀끝으로 살짝 음미할 때, ‘타인의 삶’ 같은 영화나 ‘죄와 벌’ 같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접고 나서, 하동 악양루에 앉아 섬진강 물결 따라 눈길을 흘려보내면서, 한 순간 시간과 숨을 멈춰 세우고 짧은 탄식을 내뱉는 것은 모두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신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미적 각성으로 세계를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때 그 순간은 영원이 된다.


큰애가 일곱 살 때 문득 자긴 슬픈 음악이 좋다기에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슬픈 게 아름답잖아”라고 심상하게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마음 깊이 남아서일까, 마음이 짠해지며 생명을 낳은 업보를 느꼈다. “아빠도 늙어?” “늙지.” “늙으면 죽어?” “죽지.” “아빠도?” “그럼.” “……”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다 사라지는 거란다.” 역시 여섯 살 때의 작은애와 주고받은 대화이다. 아이는 순간, 그윽한 현자의 표정을 지었다. 한번 안아주면서 나도 문득 현자가 된 느낌이었다. 안타깝지만 아이들은 꽤나 힘든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움을 알아가고, 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미의식을 따라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무를 거쳐 소멸이 나타난다. 소멸은 아름다움의 대모(大母)인 것이다.


천거할 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천거하지 않는 것은 당시 관리의 허물이고, 세상에 알릴 만한 행적이 있는데도 알리지 않는 것은 뒷사람의 책임이다.


얼마 전 후배가 준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산문집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인재를 쓰지 못하는 것은 권력자의 잘못이고, 아름다운 사연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문인의 허물임을 말한 것이다. 그 사연을 무엇으로 세상에 전할 것인가? 100년 전까지만 해도 그건 오직 글이요, 문학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려 하거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이 사라지려 할 때, 그 사람이나 그 장면을 다치지 않고 생생하게 잡아두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 차마 아무렇게나 잊어버리거나 지나쳐버리거나 버려두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때로 사라져버린 것을 떠올려 눈과 귀가 잠시 멀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다. 누구인들 그런 마음이 없으랴! 그러니 누구의 삶인들 문학이 아니랴!


지난 늦은 가을 앞산에 있는 극락사에 오른 적이 있다. 백마산 중턱의 극락사는 그 오가는 길이 아름다운 절집이다. 풍경 소리를 들으며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돌고 내려가는데 문득 대웅전 앞에 숨어서 빛 바래가는 조그만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빨간 빛과 노란 빛과 파란 빛이 섞여 있는데, 파란 빛은 완연히 아래쪽에 힘없이 숨어있다. 나도 모르게 “곱다!”고 말을 흘렸다. 잘 늙은 할머니를 우린 보통 “곱다!”고 한다. 석양에 물든 노을도 고운 것이다. 아기나 신록이나 아침 해는? 그건 예쁘다고 해야 한다. 곱다는 말에는 소멸이 내포되어 있고, 그래서 그 말에는 ‘설움’이 배어있다. 그래서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고 한 지훈의 마음을 난 이해할 수 있다. 후배 하나가 논문을 쓰다가 시인이 노쇠하여 읊은 시구 “庭菊想應開口笑, 巖楓寧有皺顔悲”를 “뜰 국화는 아마도 활짝 피었을 테니, 바위 위 단풍이 어찌 곱지 않을 것인가”라고 번역했는데, 슬프다는 뜻의 ‘悲’ 자를 ‘곱다’고 한 이유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1771년 박지원은 43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누이를 잃고 짧은 묘지명을 지었다.


㉮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다. 나는 그때 갓 여덟 살이었다. 장난으로 누워 발을 구르고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더듬거리며 의젓하게 말을 하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을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 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달래며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위에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어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어뜨리던 일을 생각하였다.


㉮는 28년 전 누이가 시집가던 날 새벽의 한 장면이다. 다정하기만한 이 광경이 인상적인 진짜 이유는 오뉘의 숨겨진 마음에 있다. 누이나 아우는 모두 이 날이 두 사람이 헤어지는 날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 짧은 풍경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분위기는 ‘설움’이다. ㉯는 28년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렇게 헤어진 누이는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었는데, 그나마 그의 시신을 실은 배도 멀리 사라지고 있다. 대조적인 두 장면 사이에 만 가마의 슬픈 정서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상실과 소멸’이라고 하는 유사한 체험이 점층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는 누이의 혼인이고, 두 번째는 누이의 죽음이며, 세 번째는 누이의 관을 실은 배의 사라짐이다. 짧은 글 속에 지속적으로 누이가 멀어져 가는 과정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글이 하염없는 슬픔을 자아낸다면, 그건 누이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도 사랑하는 존재가 차츰 멀어져 사라지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체험하기 때문이다.


고골리(1809~1852)와 생텍쥐페리(1900~1944)는 살았던 시대와 공간에서 일점 겹치는 부분이 없다. 물론 나도 이들과 일면식이 없다. 하지만 내 책꽂이에 김성탄(1608~1661)과 신채호(1880~1936)가 나란히 앉아있듯, 나와 두 사람은 때로 모여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고골리는 ‘외투’에서 어렵게 장만한 외투를 강탈당하고 그만 절망을 이기지 못해 쓸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그렸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유목민들의 텐트를 기웃거리다 사막 위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노예들의 모습을 잡았다.


나는 그가 고통을 느낀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하나 죽는지라, 나는 그의 안에서 꺼져 가는 영상들이 어떤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세네갈의 어떤 대농원이, 남쪽 모로코의 어떤 하얀 도시들이 차차 망각 속에 파묻혀 들어가는 것이었던가? … 그 단단한 해골이 내게는 그 오랜 보물상자같이 보였다.


(안응렬 역, ‘인간의 대지’)


누구의 보호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흔한 파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핀으로 꽂아 현미경을 들이대는 자연 관측자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존재가 사라졌다. 동료 관리들의 조롱을 아무런 저항 없이 참아내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도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한 존재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버렸다. 비록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이긴 했지만 그에게도 외투의 모습을 빌려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 찾아와 짧은 시간 동안 그의 고달픈 삶을 비춰주기도 했고, 견딜 수 없는 불행이 엄습하기도 했다. (조주관 역, ‘외투’)


솔직히 따져보라. 사막 위에 누워 영면을 기다리는 노예와, 외투 하나로 환희에 젖었다가 또 그 외투 때문에 절망에 빠져 죽어간 아까끼예비치, 이들의 삶이 우리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누군가 거기에 마음을 주고 따스하게 말을 거는 순간 보물상자가 열리고, 희미한 불꽃이 사라지기를 멈추고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불행한 삶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한 장면을 건져 남겨준 두 작가를 좋은 벗으로 삼기로 했다. 우리의 삶도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을 휘두르고, 돈을 처발라 거대한 묘역을 조성하고 큰 빗돌에 이름을 새겨 넣어야 그 삶이 전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소박하고 작아도 진실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이고 ‘이웃의 일상’이다.


사진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문학을 포함하여 어떤 예술이든 그렇지 않을까? 모든 예술은 순간의 강렬한 인상, 어떻게든 그것을 포착하고 잡아두려는 몸부림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억겁의 세월 무수한 사람들의 사연 중, 지극히 일부 순간들만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또 몇몇만이 영원에 버금가는 지위를 얻게 된다. 의상(義湘, 625~702) 스님은 “한량 없는 세월이 한 순간 생각이요, 한 순간 생각이 한량 없는 세월.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이라고 갈파했고, 청초(淸初)의 문장가 김성탄은 “죽을 먹을 때 떠오른 착상을 숟갈을 놓고 잡아야지, 다 먹은 뒤에 잡으려고 한다면 안 된다”고 하였다.


신라 천년 사직을 뒤로하고 등을 보이고 떠난 마의태자, 시집가는 누이의 뒷모습, 수평선 위로 한 점이 되는 사라지는 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만 차츰 작아지는 기러기, 늙은 아버지의 눈빛, 깜빡거리며 줄어드는 촛불, 곱게 물드는 석양과 단풍 등에 우리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거기서 삶의 소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바로 우리 삶에서 문학이 반짝이는 순간이다.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해는 지는 빛이 곱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님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어여쁩니다 (한용운, ‘떠날 때의 님의 얼굴’)


현재 지구상에는 6800개 정도의 언어가 있는데, 평균 2주에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밖에 하루하루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라지는 것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면 문학도 끝내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경향닷컴/이승수 한양대 강사/일러스트 김상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