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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표도르’ 심영희 “상대 KO될 때 쾌감 최고”

물조아 2008. 1. 25. 05:30

우리 나이 마흔다섯(1964년생)에 세계 격투기 챔피언이다. 게다가 여자가 주인공이다.


영화나 소설인가?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줬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한국-덴마크)을 소재로 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요즘 회자되면서 이를 본뜬 또 다른 스포츠 영화 줄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오른다.


아니다. 실화다. 여자에게는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지기 쉬운 이종격투기라니 오히려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든다. 차고, 때리고, 조으고, 꺾고 등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이 허용돼 지구상 스포츠 중 가장 잔혹하다는 이종격투기 아닌가.


재중교포(조선족) 심영희씨. 여자 이종격투기 최고봉에 올라 '여자 표도르'로 불리는, 40대 중반의 아주머니 현역 선수다. 합기도 5단, 쿵푸 5단, 검도 5단 등 총 15단의, 그야말로 ‘무서운 여자’다. 그는 지난해 4월 WPMA(세계여자격투기) 챔피언에 등극, 미주 사회를 놀라게 했다.


당시 상대는 그보다 스물두 살이나 어린, 멕시코 여자 격투기의 자존심인 이사벨 마르티네즈였다. 그는 쟁쟁한 명성을 날렸던 마르티네즈를 2회 KO로 잠재웠다.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 부모의 고향인 한국을 찾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달 서울에 왔다.


링 위에서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 방문에서 또 하나의 뜻을 이루려 한다. 이제는 위치가 바뀌어 챔피언으로서 마르티네즈의 도전을 받아들여 결전을 앞둔 그는 한국에서 보다 한 차원 높은 합기도와 발차기 기술을 연마한다는 생각이다.


'무술의 길은 끝이 없다'는 생각에서 챔피언이 되고 나서도 매달 수천 달러를 들여 각 기술 분야의 최고 스승에게 개인 레슨을 받는 그의 무도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부분이다.


지난 23일 훈련 현장으로 향하는 그를 만났을 때 선입견이 단숨에 무너졌다. 연상했던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오똑한 코, 쌍꺼풀 눈매, 균형 잡힌 몸매. 한국의 40대 얼짱 아주머니 같았다.


그렇지만 이 첫인상도 오래 가지 않았다. 돌덩이 같은 같은 근육, 딱 벌어진 어깨, 매서운 눈매. 그가 훈련 강도를 높여 가는 것과 비례해 40대 아주머니 이미지는 사라져 갔다.


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 소리와 함께 맹수로 바뀐 듯했다. "상대방이 주먹이든 발이든 한 방 맞고 KO될 때 쾌감을 만끽한다"며 웃는 모습에서는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종격투기는 근성·정신력·기술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10전 10패가 필연이다. 현역으로서는 할머니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체력에 문제는 없을까? 그는 “체력은 넘버원이라 자부한다”라고 자신했다.


그 비결은 뭘지? 그는 "타고난 체격에 고된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밝혔다.


중국 길림성 출신인 그는 여덟 살 때 쿵후로 무술에 입문했다. 10대에는 중국 육상대회 1500m·3000m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차력도 연마했다. 그의 배 위로 승용차가 지나갈 정도다. (사진1)


그가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기까지는 눈물 그 자체였다. 20대에 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더 큰 무대를 찾아 서른셋 늦은 나이에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으로 떠날 당시 남편과 아들까지 있었지만 챔피언이 되고 싶은 그의 도전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ABCD를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물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유지했다. 월 800달러밖에 안되는 수입이었다. 그 중 반은 집세였다.


그는 나머지 돈으로 영어 교습, 격투기 레슨, 생활비를 해결했다. 그래도 날마다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떠한 좌절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점점 미국과 멕시코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보다 선천적으로 신체 조건이 좋은 흑인을 비롯한 외국 선수들과 당당히 싸워 이기며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이 잇따랐다.


미국과 멕시코에서 그의 입지는 무척 두텁다. 지난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최고 경호원으로 스카우트됐을 정도다. (사진2)


교민들은 경기장에 커다랗게 걸린 그의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 한다. 교포뿐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관중은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링 위로 입장하는 심씨의 태극마크를 더 이상 낯설어 하지 않는다.


그는 우승한 날엔 링 구석구석을 누비며 태극기를 휘날린다.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으니 최고의 스포츠 외교가가 따로 없다.


그는 격투기를 계속하기 위해 영스 마샬 스쿨이라는 무술 학원을 세웠다. 이 수입으로 개인 레슨비와 생활비를 충당한다.


그는 영원한 세계 챔피언으로 남고 싶어했다. 그의 사부인 재미교포 김윤배씨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 후에도 그는 이각수 세계합기도연맹 사무총장에게 한 수 지도를 받기 위해 서둘러 체육관으로 향했다./JES/이예진 기자/사진=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