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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좋은 적을 만나는 법

물조아 2008. 1. 24. 08:54

좋은 친구를 만나기는 어렵다. 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좋은 적을 만나는 것이다.”


(…) 블로그는 많은 친구와 적을 만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BBS나 포털의 카페, 미니홈피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달리 블로그는 자신을 위한 공간이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위해서든, 누군가의 블로그 링크를 통해서든, 우연히 방문했든 관계없이 블로그는 대부분 어떤 사람 혼자의 공간이다. 팀 블로그나 기업 블로그, 단체의 블로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블로그는 어떤 사람 혼자 운영하는 공간이다. 때문에 친구를 만들기도 쉽고 적을 만들기도 쉽다. (…)


한 블로거의 이야기가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 그는 얼마 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디 워’에 대한 한국 영화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샘 솟을 때였다. 내가 알기로 그는 한국 영화는 재미있든 재미 없든 무조건 가서 보는 사람이었다. 영화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영화를 가리지 않고 가서 봐야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도 ‘디 워’에 대해 다소 실망한 것 같았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블로그에 이야기했다.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어디선가 찾아 온 사람들이 그의 글에 그야말로 악플을 남기기 시작했다. 평소 몇 개의 댓글만 붙던 그의 블로그에 유독 ‘디 워’ 관련 글에만 수백개의 댓글이 붙었고 대부분 비난의 댓글이었다. 그는 악플에도 성심껏 답글을 달았고 자신의 의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별 의미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썼던 글을 지웠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댓글을 쓸 수 없도록 했다. 그 일이 벌어진 후 그는 블로그에 “블로그에서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는 글을 남겼다.


블로그는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또한 미디어(media)이기도 하다. 이것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특히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블로그는 미디어와 같은 특성이 있다. 카페나 미니홈피에서 ‘디 워’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기껏해야 친구들(미니홈피)과 좀 싸우거나 카페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정도다. 그러나 블로그에서 그런 글을 쓰면 상황이 달라진다. (…)


블로그에서 좋은 적을 만나는 법과 블로그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법은 완벽히 일치한다.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원칙은 지난 5년간 내가 블로그를 쓰며 느낀 것이며 그 이전에 블로그를 썼던 해외 유명 블로거들도 공감하는 것이고 그들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번째 원칙, 네트워크의 건너편에는 사람이 있다. 두번째 원칙, 우리가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세번째 원칙,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네번째 원칙, 이것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인가? 다섯번째 원칙, 블로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블로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또한 좋은 적을 만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블로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터넷 웹 서비스에서 가능하다. 또한 인터넷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혁신하기 힘들다고 믿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어떤 공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그러니까 블로그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아픈 순간과 대면하게 될 때 절망하곤 한다. 그러나 다섯 가지 원칙을 기억한다면 그런 절망은 순간일 뿐이다. (…)/경향신문/이준영/트레이스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