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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요즘 깜빡 깜빡… 얼른 치매검사를

물조아 2010. 2. 18. 14:19

[한국일보]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명절 연휴 동안 부모님과 지내다 보면 새삼 그분들의 연세를 곱씹게 된다. 몇 년 새 부쩍 늘어난 주름살이나 흰머리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뜬금없는 행동이나 두서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넋두리다. 혹시 치매 증상은 아닐까 겁부터 더럭 난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언행이 모두 치매 증상은 아니다.

 

노인성 우울증도 기억력ㆍ집중력 장애 생겨

 

치매와 노인성 우울증은 노년에 가장 흔한 신경정신 장애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0% 정도가 우울증을 동반하므로 치료를 하려면 두 질환을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 가운데 치매는 8.5~9.5%, 노인성 우울증은 15%가 앓고 있다. 두 질환은 초기 증상이 비슷하고,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 구별이 쉽지 않다. 특히 노인성 우울증은 젊은이의 우울증에 비해 기억장애나 집중력장애가 심해 마치 치매처럼 보여서 ‘가성 치매’라고도 한다.

 

반대로 치매를 우울증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전측 두엽성 치매나 피질하 혈관성 치매에서는 우울증이 치매의 첫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가장 흔한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도 발병 초에 우울증세를 보이거나 우울증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전체 환자의 3분의 1에 이른다.

 

따라서 우울증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면 치매를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 아직도 기억 감퇴를 겪는 노인 환자에게 단순히 인지기능 검사만 시행해 치매 여부를 진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의 몫으로 돌아간다.

 

노인성 우울증은 적절히 치료하면 회복률이 80%에 이르지만 제대로 치료 하지 않으면 만성 통증이나 신체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노인성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감퇴는 값비싼 인지기능개선제를 먹어도 호전되지 않고 소화장애, 불면증 등 부작용을 낳아 우울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다.

 

반대로 우울증이더라도 반드시 인지기능 검사 등을 통해 치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매를 우울증으로 오진하면 치료 적기를 놓치게 되고, 우울증 치료제인 3환계 항우울제나 안정제로 인해 증상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인지기능과 기분에 대한 체계적인 검사는 진단 초기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인성 우울증 가운데 8~50%가 치매로 진행하며, 치매 환자 가운데 10~20%는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매 진단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울증검사를 함께 시행해야 하며, 불면, 불안, 의욕저하 등의 증상이 동반된 기억감퇴가 나타나면 더욱 그렇다. 이제 치매는 인지장애, 우울증은 기분장애라는 단순 공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치매인가, 건망증인가?

 

치매와 건망증은 엄연히 다르다. 건망증은 단순 기억장애이기 때문에 연관된 힌트나 귀띔을 해주면 대부분 곧바로 기억해 낸다. 나이가 들면 뇌세포의 수가 줄어들면서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 같은 건망증은 차근차근 생각을 더듬다 보면 기억해 내는 수가 많다. 기억 속도만 떨어질 뿐 정확성은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뿐 아니라 인지기능 전체가 떨어지는 질환이다. 기억장애만 나타나는 초기 치매도 전혀 기억을 못 한다는 점에서 건망증과 다르다. 가령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어디서 몇 시에 모이기로 했더라?”고 한다면 건망증이고, “뭐? 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어”라고 한다면 치매로 인한 기억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건망증은 기억된 내용을 인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인데 반해, 치매는 내용을 저장하는 단계부터 장애가 생긴 것이다. 아울러 치매는 건망증과는 달리 진행성 장애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기억력 장애가 점점 더 심해져 직무 수행이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기억력이 계속 조금씩 나빠진다면 건망증보다는 치매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치매, 원인별로 치료법과 효과 달라져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억장애, 언어장애(하고 싶은 표현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거나 물건 이름을 말하는데 막히는 증상), 방향감각 저하, 계산력 저하, 성격과 감정 변화이다.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기억력 감퇴와 하고 싶은 언어 표현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 언어장애다. 그 다음으로 방향감각이 떨어지고 계산 실수를 보이며 성격이 변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쯤 되면 이미 초기가 지났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억력 감퇴 증상이 나타나면 신경과를 찾는 것이 좋다. 신경과에서는 신경심리검사를 거쳐 치매 여부를 판정하고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뇌 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 등을 통해 원인을 규명한다.

 

치매는 크게 혈관성 치매와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 알코올성 치매, 질환으로 인한 치매 등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80~90%를 차지한다. 감염성 질환, 대사성 질환, 내분비 질환, 중독성질환, 파킨슨병, 수두증, 간질 등으로 치매에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10~20%에 불과하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이 누적돼 나타나는 치매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흡연, 비만 등을 가진 사람에서 많이 나타난다. 초기에 발견하면 항혈소판제나 와파린을 투여하거나 경동맥 수술을 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쾌도 가능하다.

 

치매의 대표격인 알츠하이머병은 고령이거나 여성, 직계가족 중에 병력이 있을 때 많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의술로서는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거나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어 치료는 증세를 완화하거나 진행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치매라도 원인에 따라 완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발병 초기에 쓰면 인지기능 장애를 개선시킬 수 있는 약물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6개월간 이 약물을 투약한 그룹과 투약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더니 투여한 그룹의 인지기능이 개선됐고, 1년 이상 그 효과가 지속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폐경 여성은 여성호르몬을 투입하면 치매에 덜 걸리거나 발병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도움말=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