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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표자를 대변할 차이를 만들어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물조아 2010. 2. 14. 22:05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대연합에 앞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영역을 찾아야”


선거 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면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분배 체제가 발전할 가능성이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차원에서 공고화되고 제도적 차원에서 안정화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는 무기력한가?


2006년 나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5년 전 최 교수가 지적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최 교수가 민중이라 부른 시민의 다수는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기보다 투표 불참을 선택하고 있었다. 학력과 소득이 낮고 주거가 불안정해 자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으며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은 이들 정치 소외계급에 대한 최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학력이 높은 사람이 한나라당을 찍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정치적 양극화’가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를 이해하는 데 투표율만큼 좋은 지표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0여 년 동안 투표율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모두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다. 투표 안 한 사람이 40% 가까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투표한 63%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표로 들어섰다. 정치적으로 보면, 유권자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사람의 지지로 대통령이 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3분의 2까지 통치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슈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싸우고,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적이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어떻다고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허상’이다. 투표한 사람들만의 정당 선호로 싸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즉 정치적으로 대표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괴리와 균열이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선호가) 개표되지 않았고, 그 많은 시민이 뭘 요구하는지 표출되지 않았다.


이 투표하지 않은 사람, 즉 ‘얼굴 없는 시민’이랄까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통해 드러났다. 자산소득, 대학 졸업 여부, 종교라는 세 가지 변수는 일차함수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집 가진 사람, 대졸자, 종교 인구가 많을수록 한나라당 지지도 높다. 반대의 경우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주택과 먹고 사는 문제에서 기존 정당이 자기들의 이익·요구·의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도 적극적 불참자와 소극적 불참자로 차이가 있지 않나.


=투표해봤자 별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망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적극적 불참자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소극적 불참자다. 하지만 차이는 애매하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과 주거 형태를 중심 변수로 봤는데, 1인 가구, 지하·반지하 가구, 전·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이 낮다는 얘기는 내용적으로 이들이 비정규직 등으로 고용 조건이 나빠 투표일에 투표하러 가기 쉽지 않다는 거다.


-선거제도 측면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역할에 비판적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가 선거를 관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정당 사이의 합의로 제도를 만들고 정당이 (선거를)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돈 안 드는 선거’, 즉 정치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정당 역할이 축소되기도 했다. 선거에서 대중과 접촉하기도 어렵고, 정당은 대중과 제대로 소통이 안 되게 됐다.


-정당 간 협의를 통해 선거제도를 만들면 정치의 효율성·생산성이란 가치가 선거제도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나.


=효율성·생산성은 경제적인 말이다. 정치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하지만, 정치의 가치는 시민의 소리를 제대로 대표하고, 대표된 소리를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기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정치가 효율성·생산성이라는 가치로 이해되면 정치는 경제적 가치에 종속된다. 경제는 시장이나 생산체제처럼 정치와는 아주 다른 수준에서 발생하는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의 소리는 어디서 대표돼야 하고, 민주주의는 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던질 수 있다.


-그런 현상을 ‘정치의 신자유주의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역량이고, 독자적 역할과 지평을 갖고 있다. 그래야 경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리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가 연동돼서 움직이면 정치는 축소되거나 소멸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는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사회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체제라는 것은 오해다. 시민이 직접 통치하는 게 아니라 대표를 선출해 통치하기 때문에 시민의 요구와 선거 결과, 그 대표가 결정한 정책 내용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들이 시민의 생각이나 요구와 동떨어진 정책을 펼 수도 있지만, 그게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얘기할 순 없는 거다. ‘지금은 절차적 민주주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최상층을 대표하는 이명박 정부가 무슨 민주주의냐’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통해 대표로 뽑혔기 때문에 엄연히 민주적이다. 그들이 아무리 정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다수가 생각한다 하더라도 엄연히 민주주의다.


그래서 정당이 중요하다. 정당의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정책이 나오고, 투표한 사람의 요구에 일정하게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나쁘면 나쁜 결과도 나온다. 용산 참사 장례식에 야당 정치인이 참석해 애도한 것까진 좋다. 하지만 ‘이벤트’다. 아니라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의 재개발 정책, 토지 정책, 도시계획에 대해 야당으로서 정책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민주당이 아무리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나? 민주당 집권 때도 비슷한 일을 했잖나.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했는데 잘못됐고, 이명박 정부는 더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저렇게 하겠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저 사람들이 집권한다고 나아질 게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야당은 민주 대연합 구도로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민주 대연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건 ‘반이명박 정부 연합’이다.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성급함의 발현이다. 이명박 정부는 반민주고 반대 쪽은 민주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또한 ‘대연합’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여러 사회 세력의 대연합이어야 하는데, ‘반이명박’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다양한 사회집단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의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대연합은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 대연합은 양당 체제적 경향이고, 소수의 이익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수의 이익이 대변될 여지를 열어놓고, 그 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안을 만드는 과정이 우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 간의) ‘차이’를 먼저 만드는 게 대연합보다 중요하다. 대연합도 차이에 기초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영역을 찾아,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투표장으로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투표라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를 귀담아듣고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를 만들 수 없다. 그동안 정치학자·평론가·정치인들이 정치현상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담론 중심으로 이슈를 따라 유행하듯 하는데, 이런 걸 그만하고 우리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