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소설가 박정희 시대 전환기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섰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 전환기, 물리적 기술은 앞섰지만 국가와 사회의 효율은 사회적 기술에 달렸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사는 시대는 전환기다. 전통적 질서는 허물어지는데 새 질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격심한 전환기는 유럽 문명이 들어온 때다. 1840년대의 아편전쟁에서 1910년대의 한일합병과 신해혁명에 이르는 그 시기에 동양의 전통적 질서가 허물어지고 유럽 문명에 바탕을 둔 질서가 대신 자리 잡았다.
질서가 바뀌는 시기이므로, 전환기엔 이동성이 갑자기 커진다. 묵은 질서에서 차지했던 지위는 뜻이 줄어들고 새 질서에 빨리 적응한 개인과 사회가 득세한다. 유럽 문명이 들어왔을 때, 일본이 잘 적응해서 단숨에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중국과 조선은 뒤졌다.
우리 국운이 상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이 바로 그런 전환기였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부터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70여년 동안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명령경제는 치열하게 맞섰다. 당시 유행했던 경제발전 이론은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Raul Prebisch)의 주장이었다. 그는 식민주의가 가난한 나라들을 발전된 나라들에 종속시킨다고 말했다. 무역에 노출될수록 종속이 심화되므로, 수입대체를 지향하라는 처방을 내놓았다. 이런 종속이론은 그럴듯했고, 대부분의 후진국들은 그것을 따랐다.
박 대통령은 무역을 통한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종속이론의 덫에 걸린 나라들이 정체의 늪에 빠진 사이, 우리는 전환기의 큰 이동성을 한껏 이용해서 중진국으로 올라섰다. 이념적 전환기에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전환기를 맞았다. 근본적 전환은 개인적 정보처리의 확대다. 개인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휴대전화는 이미 개인들이 일상적으로 사회 정보망에 접속해서 정보를 얻도록 만들었다. 단숨에 세계적 기업들로 자라난 마이크로소프트·야후·구글·아마존·인텔·삼성전자·델·노키아와 같은 기업들이 개인적 정보처리를 돕는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은 음미할 만하다.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휴대 정보처리장치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어 판단할 터이다. 삶이 본질적으로 정보처리이므로, 개인적 차원의 정보혁명이 지닌 뜻은 깊다.
개인적 정보혁명은 세계화를 촉진시켰다. 세계화는 고대 문명이 일어난 뒤 줄곧 이어진 과정이지만, 개인들과 기업들의 향상된 정보처리는 국경을 낮고 성기게 만들어서 세계화에 큰 동력을 제공했다.
개인적 정보혁명과 세계화는 당연히 이동성을 크게 높였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잘 이용했으니, 우리 기업들은 시장에서의 몫을 크게 늘렸고,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났고, 덕분에 우리 경제는 금융 위기에서 먼저 벗어났다. 큰 사업의 수주가 국가들 사이의 총력전에 가깝다는 사정을 생각하면,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사업을 우리 기업들이 수주한 것은 우리 국력의 성장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서 요즈음 '국운'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지금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기회라는 것을 많은 시민들이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의 장기는 본질적으로 물건들을 만드는 물리적 기술(physical technology)이다. 사회의 효율은 사람들의 활동을 조직하는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경제 활동들이 잘 조직되어 거래 비용이 줄어들어야 물리적 기술이 제대로 쓰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 기술이 크게 뒤처져서 기업들이 치르는 비용이 너무 크다. 사회적 기술의 향상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긴요하다.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실제로 쓰는 것은 사람들이므로, 뛰어난 인적 자원은 당연히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한 기회를 찾아내어 기업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가들이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을 때,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과 같은 전설적 기업가들이 지도적 역할을 했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움츠러들어서 그런 기업가들이 나오지 않는다. 기회를 보면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가들이 많이 나와야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렇게 사회를 활기차게 만드는 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정치 지도자다. 다행스럽게도 이 대통령의 지도력은 점점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힘든 일정을 따르느라 입술이 부르튼 현직 대통령과 밤을 새워 댓글을 달던 전직 대통령 사이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다원적인 현대 사회에서 대통령의 지도력엔 엄격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운 상승의 기회를 잡겠다는 시민들의 결심이 지도력을 떠받쳐야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운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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