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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스타를 지켜주지 못하는 풍토

물조아 2009. 8. 3. 10:32

 [조선일보] 김대중·顧問 "스타가 되면 잘나가고 까부는 경향 있지만 앞서가고 잘나가는 사람 끌어내리려는 우리사회 일부의 악마성은 우리 모두를 절망케 한다"


「마린 보이」 박태환의 부진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스타 또는 영웅을 지켜내지 못하는 우리의 고질병을 또 한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깊이가 없이 표피적(表皮的)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에 이끌려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스타들은 조금만 잘나간다 싶으면 곧바로 옆길로 빠지곤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끈기가 없다. 스포츠 영웅들은 때로 세계의 정상에 오르지만 한두해 지나면 이름이 사라진다. 외국의 스타들처럼 3연패(連覇), 4연패 했다는 기록이 별로 없다. 세계가 놀란 일이지만 톰 왓슨이 60세 나이에 브리티시 오픈에서 정상에 오를 뻔한 것은 우리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의 일이다. 대학 입학할 때 1등으로 들어간 사람이 졸업할 때도 1등으로 나오는 일은 드물다. 외국에 사는 한국계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외국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졸업할 때도 그랬다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굳이 그 사정을 들여다보자면 우선 본인들이 초심을 잃고 자만에 빠져 자신이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며 더욱 정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정상급의 성적을 올린 젊은 선수들을 밤에 술집들에서 마주친 적도 있는 것을 보면 젊은 그들이 쉽게 자기 성과에 도취하고 거기에 함몰돼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는다는 말들이 곧이들린다. 한마디로 잘나간다고 까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가, 기성 업계가 그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그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우리의 스타들을 멍들게 한다. 스타들을 내세운 광고의 홍수를 보라.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훈련하느라고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해온 감성의 젊은이들과 그 가족에게 돈과 명성과 인기는 정말 피해가기 어려운 유혹이다.


하나의 유혹도 견디기 어려운데 「유혹」이 경쟁적으로 달라붙으면 어린 선수들과 그 가족들에게 균열이 생기는 것은 불문가지다. 박태환 선수가 말하고 있는 「어른들」의 밀고 당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잡음들은 선수들이 얼마나 이런 것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앞서가는 사람, 잘나가는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악마성(惡魔性)은 정말 우리 모두를 절망케 한다. 댓글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저질 비방과 거짓의 남발은 남 잘나가는 꼴, 남 잘사는 꼴을 그냥 두지 않는 우리 사회 어둠의 한 단면이다.


우리에게 스타와 영웅을 지켜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 꽤 지난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어린이들의 영웅인 어느 야구선수가 음주운전으로 걸렸을 때 일본 언론이 이것을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내부적인 논란을 벌였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스포츠 영웅의 범법행위를 보도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이들의 영웅을 추락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가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고민이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박태환 문제」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 우선순위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리더화(化)에 둘 것인가, 전체의 평준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잘나가는 사람들을 흠집 내고 끌어내리는 풍토 아래서는 스타가 나올 수 없다. 우리는 한두 사람의 스타에게 열광하면서도 그 스타의 추락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그러면 그렇지』라며 손을 터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교육과 균등한 기회, 평준화에 열중하는 교육의 차이는 당연히 있다.


앞서 가는 스타들이 망가지는 것 그것은 그것을 밀어주고 키워주는 사회적 역량 내지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지만 21세기의 세상에서는 더러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 개천을 1급수로 만드는 사회적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는 용이 나올 수 없다.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라는 1급수 대학이 있고 미국에도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 리그에 속하는 명문대가 그 나라의 스타와 지도자들을 길러낸다.


박태환 선수가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자신의 뼈를 깎는 재기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그를 더 이상 건드리거나 이용하거나 끌어내리지 말고 지켜주었으면 한다. 김연아 선수 생각이 났다. 그는 박태환의 「오늘」을 잘 봤을 것이다. TV에서 김연아의 상큼한 모습을 담은 광고를 볼 때마다 김연아를 걱정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지켜내는 것 못지않게 사회가 스타를 지켜주는 세상이 아직은 아니라는 걱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