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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30년 꿈 “이제야 두려움 사라져”

물조아 2009. 4. 9. 23:26

ㆍ베토벤 소나타 전곡연주 ㆍ19일 하루 동안 10곡 연주… 국내 첫 시도 ㆍ“매듭 아닌 시작… 음반작업 매진할 것”


“이제야 두려움이 사라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55)는 그렇게 말했다. 19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게다가 하루에 10곡을 모두 연주하는 강행군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루에 전곡 연주’라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선 이성주는 “30년 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라고 했다. “베토벤 소나타 10곡은 음악적 깊이에서나 테크닉에서나 어느 한 곡도 만만히 볼 수 없던 탓에, 50대 중턱을 넘어선 지금에야 자신감이 생겼다”고도 했다.

 

베토벤의 음악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육체와 정신의 결합, 감각적 즐거움과 심오한 철학이 나란히 동행하는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해석과 연주가 어려워요. 특히 6번, 10번이 난감한 곡이에요. 6번의 4악장은 굉장히 혁명적이거든요. 테마가 나오고 그것이 짧은 변주곡들로 이어지는데, 소나타에서 이렇게 진행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베토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30여곡을 남겼다. 그중 ‘바이올린 소나타’로 작곡된 곡은 미완성작과 미출판작을 포함해 모두 스무 곡이며, 그 가운데 열 곡이 작품번호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흔히 말하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바로 이 열 곡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5번과 ‘크로이처’로 불리는 10번이다.


이성주는 “곡 하나하나의 개성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숙제”라며 크게 웃었다. 10일 후로 다가온 연주회의 부담을 이미 떨쳐낸 모습이었다. 그는 얘기가 ‘베토벤의 좌절과 극복’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나도 어찌 좌절이 없었겠느냐”고 했다. 특히 그는 “20대 후반에 연주자의 길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갈등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 무렵의 이성주는 미국에서 꽤 잘 나가던 연주자였을 텐데, 왜 갈등했던 걸까.


“연주자로서 본격적으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는데, 스케줄이 너무 빡빡했던 것 같아요. 몹시 힘들었죠. 마침 집에서 결혼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제가 연주 여행 다니는 걸 반대하셨어요. 심각한 혼란에 빠졌죠. 그러다가 미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연주회가 있었어요. 그날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아서 겨우 무대에 섰거든요. 작은 음악대학 강당이었어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소나타를 연주하다가, 별안간 뜨거운 확신 같은 것이 밀려왔어요. 그래, 난 이거 없인 못 산다, 그런 확신이요. 그것뿐이죠. 더이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때부터 음악이 내 인생의 1순위가 됐죠.”


그동안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를 대변했던 ‘예쁜 언니’의 이미지. 하지만 그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과 대면하면서 그 ‘뽀샤시’하고, 해사한 이미지도 벗어버렸다. 연주회를 앞두고 촬영한 프로그램 사진 속의 이성주는 과거에 비해 훨씬 무겁고 진지하며, 자기 세계를 단단히 갈무리한 모습이다. 그는 “표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에, “이젠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요”라며 또 소리내 웃었다. “연주자가 아닌, 음악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존 레논의 ‘이매진’을 꼽았다. ‘이매진’의 몇 소절을 흥얼흥얼 노래하기도 했다. 그는 또 “말러 교향곡 5번의 첫 악장에서, 트럼펫이 연주하는 서주도 매혹적”이라면서 “말러 5번은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한 연주가 제일 좋더라”고 덧붙였다.


“남들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니까, 이제 하나의 매듭을 지었다고 해석해요.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살아온 걸 돌이켜보면, 그날 할 일을 다 못한 상태에서 늘 밤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항상 2% 부족한 나날이었어요.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죠. 앞으로 레코딩에 더 매진하고 싶어요. 아르투르 그뤼미오처럼, 음반에서 더 돋보이는 연주자들도 있잖아요.”


이번 연주회는 19일 오후 3시와 7시30분에 열린다. 중간에 두 시간의 휴식이 마련된다. 연주회에 즈음해 이성주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도 세상에 나온다. 1년 전 체코 스메타나홀에서 가졌던 프라하 필하모닉과의 협연 실황이다. 경향신문 문학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