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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철지난 얘기라고? 현실은 변한 게 없는데!

물조아 2008. 6. 21. 05:43

 인터뷰 /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펴낸 박세길씨

 

소련 붕괴 때부터 ‘새로운 사회주의’ 모색, 창조적 다수가 ‘매혹적’ 미래혁명 이끌 주체, 기존 담론 공격한 ‘촛불’ 이미 예고됐던 것


1988년에 1권이 나온 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당대 대학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1992년에 3권까지 완간됐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수십만 권 나간 것으로 안다”고 박세길(46)씨는 멋쩍은 듯 말했다. “서울·인천 지역 현장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실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토론한 것”을 묶었는데, 대학생 때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그처럼 주로 노동교육 현장 쪽에 있었고 여러 차례 고초도 겪었다.


그가 이번에 자신의 7번째(공저는 빼고) 책을 냈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시대의창 펴냄). 700쪽에 가까운 이 두꺼운 책을 16년 전부터 구상하고 써왔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로 ‘혁명’이 용도폐기된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에 하필 혁명을 화두로 삼다니. “오기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자문했다. 혁명이 철지난 얘기라는 게 과연 맞나? 우리 현실은 변한 게 없는데.”


책은 ‘근대혁명의 빅뱅’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산업혁명을 거치고 1848년 혁명과 파리 코뮌을 지나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한반도, 베트남혁명, 68혁명, 카리브, 중남미와 사파티스타까지 가면서 혁명의 극복 대상인 자본주의의 기사회생과 한계를 아울러 훑는다. 여기까지가 ‘혁명의 추억’이다.


박세길씨에게 혁명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그에게 혁명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람 중심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 또는 인민의 권력통제가 가능한, 확장되고 심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사회연대국가’ 또는 ‘공동체 복지모델’ 건설로도 변주된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라는 말을 꺼린다. 20세기에 실패로 끝난 옛소련 식 국가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선입견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혁명은 피와 폭력, 음산한 비밀 전위조직 등 스테레오타입화한 이미지들과 겹치는 국가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다. “미래의 혁명은 매혹적이어야 한다.”


‘미래의 혁명’을 이끌 주체는 ‘창조적 다수’다. “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생산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종종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특정 분야의 여론을 주도하기도 하며 정권의 향배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기존 좌파가 중시했던 ‘선진 대중’은 전위집단이 생성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충실히 전달하는 집단이었지만 창조적 다수는 독자적으로 메시지를 생성하고 유포한다. 지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집단이다.” “창조적 다수 구성원들은 자신을 독립적 중심으로 사고한다. 각자가 중심이면서 동시에 다수를 이루는 창조적 다수가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관계구조는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뿐이다. 바로 여기서 창조적 다수를 생성시킨 요소들이 수직적 위계질서를 허물고 수평적 소통과 연대를 촉진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치 최근의 촛불시위를 두고 하는 얘기 같다. 이 ‘예언자적’ 얘기를 박세길씨는 이미 한참 전에 써 놓았다. 그는 “촛불시위는 예고됐던 것”이라며 “새로운 혁명이 시작됐다”고 했다. 촛불시위가 미래의 혁명이란 말인가? “신자유주의나 미국, 조·중·동 등 기존의 확고부동했던 담론이나 담론 생산자들이 의심받고 공격당하기 시작했다. 이게 중요한 거다. 촛불시위는 그 총체적 표현이다.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분노의 폭발이 아니다. 촛불시위는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과거형 권력의 통제로는 차단이 불가능하다. “1980년대에도 그랬지만, 운동이란 탄압을 먹고 자란다.” 힘으로 막으면 막을수록 오히려 혁명은 더욱 추진력을 얻을 것이란 얘기다.


시위 양태도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자발적 개인들이 각자의 삶터에서 개방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대안의제를 설정하고 토론을 벌여 실천담론을 생산하는 일상투쟁을 벌이다가 필요하면 광장에 집결해 폭발적으로 집단의사를 표시한다. “이는 83%에 이르는 대학진학률,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 온라인 통신혁명 등의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것 자체가 이미 혁명적 변화다.


창조적 다수가 추구하는 ‘미래 가치’는 생태주의, 문화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다. 그들은 수평적 연대를 통해 협력하고 공존하면서 노동과 기업, 자본, 시장을 사람 중심으로 바꿔간다. “촛불시위는 바로 그것을 선취한, 세계사적으로도 전례 없는 일”이다. 다만 “미래 사회의 비전이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이 촛불시위의 한계라면 한계다. 따라서 앞으로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학습하고 토론하면서 실천적 과제, 실천담론, 곧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이 바로 그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그는 기대한다. 한겨레 글 한승동 선임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