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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폰을 거부한다

물조아 2010. 10. 1. 06:19

[한국일보] 김희원기자 hee@hk.co.kr 고은경기자 scoopok@hk.co.kr

 

세상은 이제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뉜다. 스마트폰을 쓰는 무리와 쓰지 않는 무리. 스마트폰이 열어젖힌 신대륙은 광활하고도 흥미진진했다. 감각을 연장하고 정보를 확장한 스마트족은 그저 조금 더 똑똑하게, 편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세상에서 산다. 그들만의 세상이 구축된다. 셀 수 없이 많은 앱(애플리케이션)들을 갈아타면서 정보와 네트워킹의 세계를 탐험하고 엔터테인먼트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와이파이의 전파만 온 몸에 적실 수 있는 곳이라면 그들을 막을 장벽은 아무 것도 없는 듯했다.

 

지난해 11월 아이폰 국내 출시 이후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수는 약 400만명. 양적으로는 기존의 휴대폰족이 전체 이동통신가입자의 90% 이상이지만 이 절대다수는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스마트폰 사용이 낯설고 힘겹거나 불필요해도 첨단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테크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열풍의 이면에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기기는 똑똑해졌을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집어던진다. "뒤처진다 비웃지 마라. 나는 스마트폰을 거부한다."

 

"원치 않는 만남" - 네트워킹 피로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트위터에 가입한 뮤지션 A(37)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신기술의 총아가 아닌 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잘 알고 지낸 동료 뮤지션 B를 팔로우하기 시작한 이후 하루에도 수십 개씩 그가 올리는 글을 마주하는 일이 고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B씨는 트위터에 푹 빠져 특별한 용건 없는 글들을 줄줄이 남기곤 했는데 A씨는 마치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처럼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A씨는 말한다. "내 주머니 속에 B가 살고 있다."

 

NGO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김나영(47)씨도 이같은 피로감 때문에 스마트폰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을 업무에 활용하라는 권고에 따라 먼저 페이스북부터 가입을 했는데 넘쳐나는 글을 따라잡는 데에 이미 지쳤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만 읽을 수 있다면 좋지만 원하지 않는 것마저 일일이 봐야 하니 정보의 바다에 푹 잠겨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은 유용한 앱을 활용, 망망대해와도 같은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낚는 데에는 월등한 능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정보검색이 아닌 네트워킹의 통로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순간, 위의 사례처럼 넘쳐나는 '접촉 피로'에 시달릴 수 있다.

 

음반제작업자인 C(47)씨는 마케팅 툴로서 트위터의 강력한 힘을 인정하면서도 여기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깝다고 여긴다. 그는 "트위터를 관리하거나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데에 그토록 시간을 들이는 대신 창의적인 컨텐츠를 상상하고 개발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창작에는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이 오히려 필요한 법" 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비단 마케팅 목적이 아니더라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일정 수준 이상의 친구를 거느리면 읽고, 응대하고, 사진을 올리는 등 '관리'는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된다.

 

"뒤처지면 안 되니까" - 테크노 스트레스

 

직장인에게 스마트폰은 마치 인터넷 업무환경이 급속히 구축되던 90년대처럼 '테크노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50대 중반의 기업체 사장 D씨는 스마트폰을 구입했다가 둔한 손가락 터치와 낯선 이용법을 정복하지 못하고 결국 해지하고 말았다. 역시 50대의 제조업체 사장인 E씨도 결국 스마트폰 사용 두 달 만에 예전에 쓰던 휴대폰을 다시 찾았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역시 사용이 쉽지 않았던 것. 결국 스마트폰에선 오락만 하고 전화는 기존 휴대폰으로 건다. 이른바 '투폰족'이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은 접어둔 채 기본기능(디폴트)인 전화로만 쓰는 '디폴트족'도 있다. 그래도 "남들 다 쓰는데 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무조건 사고 본 이들이다.

 

평소 어얼리어답터로 자부해 온 우지영(33)씨도 유행에 혹해 석 달 전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이런 저런 앱을 100여개나 다운받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곧 트위터 단말기로 전락했다. 시간이 지나며 쓰는 앱은 5, 6개밖에 되지 않았다. 알람 기능도 못 찾아 "스마트폰에는 알람이 없다"는 선배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라며 "20대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신기술은 늘 테크노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유저와 비유저간 양극화를 불러일으켜 왔다. 스마트폰은 열풍이 거센 만큼 스트레스도 크다. 대학교수인 F(50)씨는 "특별히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도 나만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일은 더 힘들다" - 악화한 노동강도

 

전자회사에 다니는 G(36)씨는 회사가 무료로 지급해준다는 스마트폰을 일부러 받지 않았다. 회사는 스마트폰을 지급하면서 사내 인트라넷과 연동하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것이 곧 족쇄임을 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주말에 업무전화를 많이 받는데 회사 메일까지 확인하면서 휴일에 업무 처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는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쓸 수 있지만 24시간 업무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라며 "조금 불편해도 기존 휴대폰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IT업체에 다니는 H(42)씨도 회사에서 지급한 스마트폰과 개인적으로 쓰던 휴대폰을 둘 다 유지하는 투폰족이다. 그는 주말에는 업무와 연동된 스마트폰은 사무실 책상에 남겨두고 퇴근한다. 최소한 주말만은 지키겠다는 나름의 저항인 셈이다.

 

"내 식대로 살련다" - 소신있는 거부파

 

보다 적극적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변화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번호통합 정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01X 번호의 소유자 중 적잖은 수는 의식적으로 자기 번호를 지키는 이들이다. 홍보업무를 하는 고은영(25)씨는 회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9년째 011 번호를 고수하고 있다. 호텔에서 일하는 윤지숙(31)씨도 12년째 017로 시작하는 2G 휴대폰을 아직 쓰고 있다. 그는 "오래 써온 물건에 애착을 느끼듯 전화번호에도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같은 017 번호를 쓰는 이들을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마치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동지를 만난 듯 은밀한 동류의식과 연대감마저 느낀다. 그는 "자꾸 신제품을 내고 유행을 만드는 분위기가 모두 기업의 상술인 것만 같아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무조건 따라가기가 싫다"고 말했다.

 

대학교수인 I(47)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싫다"며 느리게 살기를 선택했다. 휴대폰 단말기도 자주 바꾸지 않아 골동품급 단말기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하루가 다르게 시중에 나오는 신기술 때문에 국가적으로 낭비가 심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 푹 빠졌던 직장인 J(32)씨는 '누구를 위한 스마트폰이냐'는 자문 끝에 나름의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정리했다. 친구를 만나서도 조금만 화제가 떨어지면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던 그는 "이럴 거면 내가 얘들은 왜 만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스마트폰을 안 쓰는 친구는 특히 짜증을 냈다. 소셜네트워킹은커녕 갖고 있던 휴먼네트워크도 깨질 판이었다. 중독에 가까운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제한한 J씨는 "이제 순도 높은 생활을 영위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거부하는 그들은 말한다. "스마트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내 식대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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