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김기훈 경제부 차장대우 khkim@chosun.com
요즘 전 세계 경제는 '빚 공포'에 억눌려 있다. 주말인 지난 4~5일에 사상 처음으로 국내(부산)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은행세와 글로벌 금융안전망 같은 참신한 계획을 들고 나왔으나 결론은 '빚 지지 말자'였다.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장관,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 중국의 셰쉬런 장관, ECB(유럽중앙은행)의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 IMF(국제통화기금)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 한국의 윤증현 장관…. 전 세계 쟁쟁한 경제사령관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재정 문제가 심각한 국가들은 재정 구조조정의 속도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발(發) 남유럽 사태로 인해, 13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 때처럼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의 부도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와중에 내린 결론이 '빚을 줄이자'인 것이다.
G20 회의가 끝난 뒤 기획재정부 간부는 한숨을 쉬었다. "정부 곳간이 거덜난 그리스에 1200조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해 봤자 살아날 수 있을까. 빚진 사람에게 위기를 넘기라며 또 빚을 빌려주는 격인데…." 그는 "남유럽 사태가 악화되면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한국에도 충격파가 몰려온다"며 "남의 빚도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빚의 부작용은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똑같은 논리와 파괴력을 갖고 다가온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큰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하고 물을 때마다 워런 버핏이 답변 속에 꼭 끼워넣는 비결 중 하나는 "빚지지 말라"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빚은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많이 빌릴수록 좋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재산을 늘리려면 빚을 많이 내서라도 대형 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중요한 단서가 붙어있다.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과 대출자 리스크(위험)의 합으로 계산되는 이자는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노예의 족쇄로 바뀐다. 요즘 그리스는 에게섬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이 빚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가계 부채도 무시할 수 없이 불어났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0.2% 성장했지만 개인 금융부채(855조원)는 6.5%나 늘어났다. 금융위기에 놀란 미국인들은 빚을 1.7%나 줄였지만 우리는 반대로 갔다. 최근 10년간을 보면 소득보다 빚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은행빚 하나 없이 월급 받아 차곡차곡 저축만 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른다'며 손가락질당하고, 결혼하면 일단 은행에서 빚부터 내서 아파트부터 장만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상식처럼 굳어진 결과이다.
반복되는 경제위기의 뇌관은 항상 빚에서 시작된다. 국가도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투자해 잘살아 보겠다'는 개인의 열정과 노력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때때로 시대흐름을 짚어 봐야 한다.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 각국이 재정을 쏟아부어 가며 경기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남유럽 국가 부도설이 나오는데도 해결의 열쇠를 쥔 독일조차 "재정적자가 더 커지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앙겔라 메르켈 총리)며 추가 재정 적자를 거부하는 시기이다. 저축이 뒷받침되지 않고 빚만 늘려가는 재테크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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