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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케네디 - 이문열] 문명과 리더십을 논하다 [중앙일보]

물조아 2010. 3. 4. 08:42

“북한의 리더십은 자폐증적 … 생존 본능만 남아있는 듯”

“강대국의 흥망, 결단력 있는 리더십에 달렸다.”

폴 케네디(65)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는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을 국가 발전의 키워드로 꼽았다. 한국의 소설가 이문열(62)씨와 ‘문명과 리더십’을 주제로 나눈 대담에서 일본을 예로 들며 한 말이다. 케네디 교수는 ‘현대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강대국의 흥망』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 위기’의 뿌리를 ‘결단력 있는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았다. “1990년대 이후 성장세가 정체된 일본이 3등 국가 혹은 4등 국가로 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대담은 중앙일보가 기획하고 경희대(총장 조인원)가 협력해 지난달 25일 서울 경희대 본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미국·중국·일본과 EU의 문명과 리더십, 그리고 한국과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두루 조망했다. 경희대 석좌교수이기도 한 케네디 교수는 2010년 경희대 입학식 특별 강연을 위해 방한했었다. 케네디 교수는 “문명의 전환기엔 가치와 이념의 충돌이 있게 마련”이라며 “현재 미국에서도 다양한 가치의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이문열씨는 “문명 전환기의 새로운 리더십이란 그 같은 충돌을 조정하고 완화시키는 기술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명 전환과 리더십은 이문열=앞으로 새롭게 지구를 이끌어 갈 문명과 리더십이 태동하고 있다면 대강 어떤 형태일까.

폴 케네디=역사학자로서 볼 때 문명의 변화는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 문화적인 것이다. 21세기 들어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첨단 휴대전화,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새로운 기술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유엔은 최근 저개발국 국민의 3분의 2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놀라운 일이다. 문화와 기술의 변화와 함께 정치와 국제관계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문열=문명의 전환기에 숙지해야 할 가치와 규범이 있다면.

폴 케네디=전환기엔 항상 가치와 이념의 충돌이 일어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 새로운 가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루소의 계몽주의 사상, 애덤 스미스의 경제사상 등이 대표적이다.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이념이 인간의 조건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사상가들이 먼저 깨달은 것이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전에 공산주의 사상이 먼저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에서도 다양한 가치의 논쟁이 매우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그룹의 것은 보편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민족적인 것이며, 또 종교적인 것에 근거를 둔 가치도 있다.

이문열=역사학자다운 해석이다. 무엇인가 결정된 것은 없다는 뜻으로도 이해된다.

폴 케네디=오늘날 정치적 리더십은 혼돈을 겪고 있다. 독일·일본의 리더십이 그렇고, 동유럽과 아르헨티나 정부를 비롯해 영국 브라운 총리도 문제에 봉착해 있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졌는데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더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선전·선동을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은 냉소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망은 높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가 선거 캠페인에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새로운 인본주의적 가치, 새로운 리더십으로 여긴 것이다. 나는 런던 등 유럽에서 열린 오바마의 유세를 직접 봤다. 젊은이들이 오바마 포스터를 모두 들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정치적 약속 실현에 실패한다면, 젊은이들은 다시 냉소적이 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종교적 혹은 문화적 지도자들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달라이 라마가 그렇고 교황도 놀라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치와 비즈니스계의 리더들은 존경받지 못한다. 유엔은 리더십의 마비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문열=『강대국의 흥망』에서 근대 유럽이 동양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로, 발전이나 진보를 저해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가 없었던 점을 꼽았다. 곧 유럽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비롯해 여러 강국이 있었으나, 절대적인 지배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상태로 이어갔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원양 항해용 범선의 건조를 금지해 정화(鄭和)가 획득한 해상 발전에서의 우위를 스스로 지워버린 명(明)제국 같은)에 지배되었던 동양보다 발전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논거였다. 그런 논거가 대륙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 안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중앙집권적 절대권위가 개발독재란 이름 아래 특정 시기 한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어낸 적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권위는 통제 방향이나 그 시대상황에 따라 양면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데 어떤가. 긍정적인 점도 있지 않을까.

폴 케네디=좋은 지적을 했다. 유럽에도 유사한 케이스가 있다. 프리드리히 대제가 통치했던 프로이센을 보자. 군사력만 강했지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대제는 네덜란드로부터 조선을, 벨기에로부터 섬유산업을 배워 나라를 일으켰다. 운하를 만들고 도로를 닦고,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개선했다. 그 60년 전에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비슷한 일을 했다. 낡고 노후한 중세의 나라를 업그레이드했다. 중앙집권적 권력이 발전을 막는다는 원칙은 모든 장소, 모든 시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예외가 존재한다.

북한의 리더십은 이문열=북한은 동아시아 평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변수다. 미국은 일본에서 한반도 남반부를 떠맡은 이래 60년이 넘게 북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6·25전쟁이란 불에 데어본 한국은 가슴 졸이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바라보아 왔다.

폴 케네디=북한과 관련된 미국의 입장은 첫째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남한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핵 정책을 바꾸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넷째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문제 지역이 너무 많아 사실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미사일 발사 같은 위기가 발생할 때만 북한이 우선순위로 올라온다. 이란·파키스탄과 중동에 문제가 터지면 북한에 관한 관심의 온도는 식게 마련이다. 게다가 북한의 리더십이 다른 국가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른다. 미국은 리비아·아프가니스탄·이란과의 협상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리더십은 의학용어로 자폐증적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대화가 힘들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소련의 브레즈네프나 중국 마오쩌둥과 대화했던 것처럼 대화할 수가 없다. 또한 ‘예측 불가능’하고 ‘강박적인 비밀주의’라는 정의를 덧붙이고 싶다. 마지막은 내 추측인데 북한의 리더십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생존 본능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문열=교수님은 유럽의 전쟁 대부분을 여러 개의 동맹국이 얽혀 싸우는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승패는 경제력, 특히 전쟁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능력에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한은 지금 평화공존을 외치고 있지만, 또한 열흘이 멀다 하고 군사적 보복의 위협이 공공연히 발표되는 형편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위협이 현실이 되어 전쟁으로 번진다면 그 전쟁은 동맹국 일부 간의 충돌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한 정치권역 안에 있는 남북한의 내전으로 봐야 하나.

폴 케네디=남한과 북한의 문제는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정치학자들의 전쟁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종류의 전쟁 중 한 진영이 패해 망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게 ‘동맹 전쟁’이다. 반면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은 내전이다. 2개 해양국가 간의 전쟁도 있다. 이라크-이란 전쟁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할 텐데, 북한의 동맹은 어디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현재 중국이 북한의 혈맹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사촌형 관계’ 정도가 아닐까. 북한과 남한의 군사적 충돌이 있을 경우 중국이 자동 의무 개입 조항을 동맹 조항에 유지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외교관과 군사 관계자들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충돌이 일어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일본 쇠락은 결단력 있는 지도자 없었기 때문”

일본의 리더십은 이문열=교수님은 『강대국의 흥망』에서 일본의 미래에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일본을 보면 어떤 절정기를 지난 듯한, 여러 방면에서 급속한 기력의 소진이 느껴진다. 이유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교수님의 현재 입장은 어떤가. 그간 일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폴 케네디=22년 전 『강대국의 흥망』이 나왔을 때는 일본을 세계의 다섯 축 가운데 하나로 본 그 말이 맞았다. 당시 일본은 너무나 융성했다. 국가의 활력도 넘쳤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성장세가 완전히 정체됐다. 장기불황에 사회 전체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경제적 예측도 맬서스의 인구론처럼 완전히 틀릴 수 있다. 예측이란 그런 것이다. 요즘에는 중국과 비교하면서 일본이 3등, 4등 국가로 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일본은 아직도 안정된 국가다. 재정적으론 풍족하고, 여전히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넘버원』이라는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견해는 더 이상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쇠락은 리더십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일본 자민당의 문화는 결단력 있는 리더를 싫어한다. 10년 전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비즈니스 리더들은 일본이 어떻게 다시 융성해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나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누차 말했다. 전후 독일 아데나워 총리가 그랬고, 알제리 내전 이후 위기에서 프랑스를 살려낸 샤를 드골 장군이 그랬다. 영국의 대처 총리도 그랬다. 그들의 결단력이 정치를 바꿨다. 또 나라를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 일본은 잘나가고 있지만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얼굴이 공포에 질린 반응이었다. 그들은 대처를 원하지 않았다. 그 뒤 일본 정치는 계속 마비 상태가 됐다. 기술·제품은 발전하고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도요타 위기가 터진 것도 비슷한 이유다. 현실에 안주한 경향이 크다.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은 지금 굴욕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좀 달랐던 유일한 지도자가 나카소네 전 총리였는데 자민당 원로들은 그를 매우 싫어했다.

“중국 리더십은 신중 … 급한 결정 안 하고 막후 외교 선호”

중국의 리더십은 이문열= 교수님은 중국과 북한 사이를 ‘사촌형 관계’ 정도로 보았지만, 내가 볼 땐 그보다 더 각별한 것 같다. ‘조·중 동맹’에는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경우 자동적 개입에 가까운 원조 조항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거기다가 북한 사람들은 10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국공내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운 일을 무슨 권리처럼 기억하고 있다. 설령 중국과 북한 사이에 그런 전쟁의 자동 개입 같은 명문 조항이 없더라도, 중공군의 참전을 끔찍하게 경험한 우리 남한 사람들에게는 중국과 북한의 동맹이 유럽에서의 그것보다 더 굳건하고 끈끈할 것으로 믿고 있다.

폴 케네디=한국전쟁 당시는 마오쩌둥 주석이 중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초기였다. 마오는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한번 미국을 몰아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이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란 생각을 못 했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은 북한에 대한 ‘의리’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고 본다. 물론 현재도 중국은 자신들이 강대국이라는 걸 세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리더십은 6·25전쟁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중국이 미국·한국과 적이 되는 전쟁에 뛰어들어 북한 편을 든다면 중국은 경제적으로 대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 리더십을 분석해 보면 굉장히 신중하고, 어떤 일에 쫓겨서 급한 결정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막후 외교를 선호한다. 북한이 무력적인 도발을 한다면 충격을 받으면서 아주 불편해할 것이다. 내가 남한 사람들보다 더 낙관적인 입장인 것은 맞다.

이문열=여전히 불안하지만, 나도 교수님처럼 낙관적인 안목을 기르도록 애써 보겠다.


폴 케네디=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겠다.(웃음)



 

“중국의 내부 취약점은 정치가 아닌 물 시멘트는 무한대로 수입할 수 있지만 14억이 쓰고 마실 물 어떻게 수입하겠나”

중국의 미래와 동아시아 공동체 이문열=교수님의 미래 예측 중에는 중국의 급성장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었는데, 거기서 교수님은 인구폭탄을 우려하면서도 대체적으로는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그런 급성장이 계속될지에 강한 회의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린다면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제동이 걸릴 것인지.

폴 케네디=중국의 미래는 모두가 관심이 있다. 세계적 핫 토픽이다.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내적인 취약점을 이야기한다. 정치적인 취약점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의 정치국은 상당히 영리하게 행동한다. 충분히 국민을 달래고 타협하며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환경 문제를 연구하는 나의 동료들은 중국 내부 자원의 취약성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내가 비교 연구를 한 것이 있다. 국가와 인구의 규모, 경작 가능한 땅과 깨끗한 수자원 등을 따져봤다. 미국·캐나다·중국·호주·브라질·인도·러시아를 대상으로 2025년과 2050년을 예측해 봤다. 예측 결과가 가장 좋았던 것은 미국과 브라질이다. 인구는 늘지만 급증하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수자원과 경작지가 풍부했다. 가장 취약한 나라는 인도와 중국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이었다. 도로와 다리를 만드는 데 물이 필요하다. 시멘트는 무한대로 호주에서 수입할 수 있겠지만 물 없이 어떻게 하겠나. 심지어 실리콘 칩 하나를 만드는 데도 엄청난 물을 필요로 한다. 또 14억 인구가 쓰고 마실 물을 어떻게 수입하겠나. 비관론자들은 자원과 환경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문열=내가 볼 땐 시장경제의 도입에서 비롯된 경제적 불평등과 심해지는 빈부격차는 심각하게 대처방안을 서둘러야 하는 문제일 것 같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폴 케네디=위안화 절상과 달라이 라마의 방미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시기가 비슷하게 겹쳐졌다. 중국은 항상 티베트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달라이 라마를 환대하는 모든 국가에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이는 결코 생산적이지 못하다. 미국도 주권국가다.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그 주권국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위안화 문제는 달라이 라마 문제보다 결과도 더 엄청나고, 정치적으로도 더 복잡한 문제다. 국제 경제의 과거를 살펴보면 항상 한 국가가 지나치게 자국의 화폐를 절하하고 있다는 식으로 다른 국가가 불만을 제기해 왔다. 유럽이 미국에 그랬고, 아일랜드도 영국이 절하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이문열=1990년대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의 첫 글자에서 딴 명칭)라 해서 동아시아 공동체가 논의된 적이 있다. 그때 한국 대표(문화 부문)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뒤 별 진전은 없었지만 그 닷새간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도 유럽연합(EU)처럼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면 어떤 리더십이 요구될까.

폴 케네디=전 지구적으로 지역 연합 시도가 항상 있어 왔다. 유일하게 EU만 정치적 헌법과 예산상의 통합을 이뤄냈다. 이는 다른 지역보다 150년 앞서가는 형태다. 한·중·일처럼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세 국가가 통합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EU는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스나 발트해 국가들 문제를 보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남한·일본·중국의 공동 관심사를 찾아 그것부터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는 공동 안보가 될 수 있겠다. 각 국가 안보 최고 책임자 간의 핫라인이 필요할 것이다. 한 국가 군함이 다른 국가 해안선을 침범할 경우 즉각적으로 정치·외교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또 해양 자원의 공유와 개발도 있겠다. 기술·자원·응급피해 대책·환경 등의 이슈를 먼저 논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EU와 같은 정치적 통합체, 헌법을 논하기보다 그쪽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폴 케네디 1945년 영국 출생.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 88년 출간한 『강대국의 흥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강대국의 재정적자와 군사비 확장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며,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예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명의 전환과 국제 정치·경제의 변화, 그리고 국가 전략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2009년 3월부터 경희대 석좌교수로 초빙됐다. 방학 기간 등을 이용해 한국 대학생에게도 그의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문열 1948년 경북 출생. 79년 출세작 『사람의 아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명으로 꼽혀왔다. 문명과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면서 동시에 인문학적 교양을 풍성히 담아낸 그의 소설은 80년대 한국 사회의 지식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90년대 후반 이래 국가적 현안에 대한 잇따른 보수 성향 발언을 내놓으며 우리 사회 이념 논쟁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제를 위하여』 『불멸』 등이 있다.

정리=배영대·최지영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