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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그저 말뿐… 관심은 없었다

물조아 2010. 2. 12. 09:26

가족의 죽음 다룬 연극으로 본 家族. [문화일보]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가족은 공기와 같다. 있을 때는 별로 소중한 줄 모르지만 막상 잃고 나면 그 상처는 치명적이다. 가족이 더욱 그리워지는 설을 맞아 아버지, 어머니, 자식과 배우자의 상실을 소재로 현재의 가족 관계와 인간의 삶을 아프게 되돌아보는 작품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 마라’(12일~3월7일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1544-1555), 신시컴퍼니의 ‘엄마를 부탁해’(3월23일까지 세종M씨어터·1544-1555) 그리고 아르코예술극장의 기획공연 ‘에이미’(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02-3673-5580)가 그것. 이들 작품을 통해 오늘날 가족해체의 주요 원인을 살펴본다.

 

◆ 무관심과 소외로 잃은 아버지 = ‘너무 놀라지 마라’는 어느 날 갑자기 “너무 놀라지 마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두고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부조리극이다.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가족관계에서 처절한 블랙유머를 통해 역설적인 가족애를 끌어내는 데 탁월한 극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씨의 작품이다. 지난해 1월 산울림극장에서 초연, 3번의 공연을 통해 대한민국연극대상, 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베스트3 등 주요 연극상의 작품상, 주연상 등을 휩쓸 만큼 전문가는 물론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은둔형 외톨이인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이 안 난다. 그저 대변을 보지 못해 끙끙 앓을 뿐이다. 홀로 가족을 부양해온 며느리 역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왜 돌아가셨느냐는 불평이다. 영화를 핑계로 나돌아다니는 큰아들은 뒤늦게 돌아와 허풍만 떨 뿐이다. 이런 광경을 보며 목숨을 끊은 아버지는 “매우 불편하다”며 빨리 장사를 치러 달라고 말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소통불능의 어이없는 대화가 그로테스크하게 전개된다. 다양한 연극적 장치로 기발하게 전개되는 이들 가족의 과장된 소통부재의 부조리가 결코 지나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 가족관계는 물론 인간관계에 무관심이 그만큼 팽배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다 주고 떠난 어머니 =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씨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실종된 어머니의 삶을 가족들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했다. 어려웠던 시절의 따듯한 가족애가 성공했지만 소원해진 형제 간의 현재의 삶과 좋은 대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배경은 산업화 직전으로 고된 시집살이와 무책임한 남편의 바람기를 이겨내고 자식들만을 위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모자이크다.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 자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서울로 자식들을 보낸 억척 어머니의 이야기다. 공장에 다니며 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동생들 때문에 목표를 포기한 형제애 등 어려웠던 시절의 편린들이 사진처럼 펼쳐지며 과거를 돌아보지만 그 안에 어머니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 없었음을 뒤늦게 후회한다.

 

딸이 은퇴해서 할 일을 적어놓은 30여 가지의 일 중에 어머니와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자책에서 과연 지금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자문하게 한다.

 

◆ 집착으로 잃어버린 딸과 아내 = ‘에이미’는 귀족적인 고고한 배우 어머니와 대중적인 액션영화 감독 남편과의 사이에서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던 딸이자 아내의 이야기다.

 

에즈메는 다층적인 연기가 특기인 유명 연극배우다. 남편은 영국을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로 많은 유산을 남기고 먼저 갔다. 도도한 그에게서 인간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대접받기만 원한다. 도미닉은 영화감독이 꿈인 비평가다. 싸구려 가십 잡지를 만들어 판다. 에즈메는 딸 에이미가 도미닉과 사귀는 게 영 마땅치 않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역전된다. 에즈메는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싸구려 CF까지 출연하고, 도미닉은 대중의 관심을 반영해 승승장구,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에이미의 생각과는 달리 이들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다가 에이미의 죽음을 계기로 비로소 화해의 단서를 찾는다.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줘야 한다. 그럼 보답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해 달라”는 에이미의 생각은 가족의 문제를 넘어 인간관계 모든 갈등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10-02-11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