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못되고 능력 ‘있어 보이는’ 그의 성공이유

물조아 2009. 8. 9. 22:16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착함’은 주관적 기준, ‘척’하는 가짜의 유통기한은 일이년


[한겨레] Q 진짜 상담해주시나요? 아주 간단한 매트릭스를 생각해봅니다. 한 축은 능력, 한 축은 성품이라고 보면 - 못된 능력자, 착한 능력자, 못된 무능력자, 착한 무능력자, 이렇게 구성이 되지요. 어렸을 때 배운 것은 ‘착한 능력자가 되자’였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 넘은 이후로 드는 의문은요, 조직에선 못되고 능력이 ‘있어 보이는 자’가 더 잘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렇게 살아야(살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거예요. 여기서 못된, 착한의 구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이익을 해칠 용의가 있다, 없다는 뜻입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도 아직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막연한가요?


A ‘착한 능력자’들을 윗선에서 찾기 쉽지 않은 건 수지타산이 안 맞았기 때문입니다.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그것은 실제 업무노동 플러스 어마어마한 감정노동을 수반해야 합니다. 부하한테도, 동기한테도, 제휴 파트너한테도, 보스한테도 두루 다방면으로 좋은 소리 듣고 욕먹으면 안 되니까요. 무리해서 할 수는 있습니다. 선과 공정성을 내 능력과 노력으로 지켜나갈 수 있었을 때, 화기애애한 팀워크로 감동적인 성공을 리드해냈을 때,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며 두 다리 쭉 뻗고 다디단 숙면을 취할 수가 있겠지요.


허나 휴먼드라마 같은 감동과 영광은 잠시,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과욕이었는지 모릅니다. 선의를 이용해먹으려는 인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죠. 내가 다칠 걸 알면서 막아줘도 상대는 나 몰라라 할 때 내심 기대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발견하고 소영웅주의의 가능성에 부끄러워집니다. 착하다는 건 사랑받고 싶어하는 나약함일지도 모르니까. 그뿐입니까, 혼자 착한 척 말라고 독사과 먹이려는 옆 팀의 뱀들이 한시도 가만히 안 놔두죠. 아, 착한 것도 못해먹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착한’ 것 맞을까요?


 정말 착하려면 보상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의 맹점은 대개 남들도 나처럼 ‘착해지길’ 바란다는 거죠. 사랑으로 내 성의를 보답해주길 원합니다. 그런데 인정이나 사랑 같은 감정적 가치는 강요가 안 되니 그 욕구가 좌절되면 쉽게 흔들리고 취약해지기가 쉽습니다. 반면 ‘못된’ 이들은 돈이나 권력 같은 실리적 가치를 원하는 사람이니, 변덕스러운 인간 마음에 휘둘릴 일 없이 오래 버팁니다. 그리고 엉덩이 무겁게 버티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윗자리로 올라갑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탐욕스런 그치들을 뒤에서 욕하고 착한 능력자의 ‘잘나가다가 막판의 요령 없음’을 안쓰러워합니다.


하지만 일터에서 성품의 차이란, 그저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떤 영광(혹은 탐욕)을 취할 것인가 하는 개개인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요? 선악의 이분법으론 설명이 힘듭니다. 가령, 개인의 이익을 위해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쳐낸 한 팀장이 그 이기적인 행동 덕에 결과적으로 자기 팀 직원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면 그 팀장은 악질일까요? 자신의 정직성만큼 비즈니스 파트너의 신의를 믿었다가 발등 찍혀서 조직에 손실을 가져왔다면, 그래도 그 사람이 더티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칭찬받아 마땅한가요? 혹은 남들이 다 싫어라 하는 그 뱀 같은 인간이 내가 버거워하는 인간을 갈궈준다면 그 뱀이 밉게만 보일까요? 이해관계가 얽힌, 많은 변수를 가진 조직 내에서 착하고 못된 것을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직에선 착하든 못됐든 결과적으로 ‘무능한’ 이를 ‘악’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총정리하곤 하지요. 과정보다 결과로 설명하는 게 차라리 공정하고 옳다고.


능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능력이 ‘있어 보이는 자’라고 했죠? 실력보다 사내 정치에 능하고 부하 공 가로채고 책임 전가하는 분들. 그런데 어쩌죠. 다소의 야비함과 더불어 법인카드 제멋대로 팍팍 쓰는 얄미움이 있지만요, 능력 ‘있어 보이는 분’들 대체적으로 정말 능력 있습니다. 흔한 얘기로 ‘능력 있어 보이게 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논리보다 도리어 실제 능력이 있는데 있어 보이는 척한다고 과소평가받는 경우가 많아요. 우두머리들이 그들의 아부 실력만 보고 두둔하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허나 못됐으니까 유능함을 인정하기가 싫고, 그의 실질적인 일을 면밀히 곁에서 관찰할 기회가 없으니까 모르고, 그러니 ‘-카더라’에 쉽게 편승됩니다. 진짜로 능력이 있어 보이는 척만 하는 ‘가짜’ 인간 쓰레기들은 어차피 길어봤자 일이년이에요. ‘높은 자리 올라가더니 인간이 변했어’라는 것도 그건 높은 자리 올라가보지 못한 인간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높은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윗사람은 일을 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힘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못돼 ‘보이는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더불어 ‘못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사니까 부하직원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 아닐까요? 그건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나 바라야 할 사항이고요, 상사가 별겁니까. 상사는 한때의 부하가 시간이 지나 올라간 모습일 뿐입니다. 인격적으로 품성이 좋아서 상사로 ‘발탁’된 게 아니라니까요.


아아, 말해 뭐합니까. ‘성품’을 매트릭스로 구분하는 당신! 서른 후반에 이런 질문 하는 당신! 어차피 당신은 못된 능력(이 있어 보이는) 자가 되기엔 이미 글렀삼. 그렇게 되고 싶어도 못 됨. 뭐 돼도 피곤한 일 많으니 걍 생긴 대로 삽시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