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완규·휴머니스트 편집 주간
세상살이가 만만찮다. 즐거울 때보다는 힘겨울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나는 대개 과거로 눈길을 돌린다. 집에 있는 책 가운데 옛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해소'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극빈 상태 속에서 고독과 고통을 묘사하는 시문이나 산문들이다.
다산과 더불어 19세기 초를 대표하는 남인계(南人系) 문인 중 이학규(李學逵·1770~1834)라는 선비가 있다. 불행한 삶과 내면을 담백하게 고백하는 서민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그의 글 중에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 있다.
〈고통을 푸는 방법(譬解八則)〉.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시름과 고민, 걱정과 질병이라는 여덟 가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열거하고 그때마다 그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더 고통스러운 장면을 이야기한다.
"추울 때에는 가난한 집의 아이를, 더울 때에는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배가 고플 때에는 구걸하는 거지를, 목이 마를 때에는 소금을 갈망하는 사람을,
수심이 찾아올 때에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殉葬)을 당하는 사람을,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생각해보라."
나에게 슬며시 다가오는 고통의 절반은 '시름과 고민'이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나의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더욱더 열망한다. 그래서 오늘도 또 되뇐다.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을 당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땅굴 속으로 들어가며 머리를 쳐들어 위쪽을 보니 경쇠의 칠흑같이 새까만 동굴 끝에 등불은 가물가물 꺼지기를 기다린다. 그 찰나 다시 벼락에 맞아 죽을지언정 그저 다시 인간 세상의 이런저런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는다면 가슴이 시원하리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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