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자클린은 피카소를 위해 종종 장어로 스튜를 끓였다. ‘뱀장어스튜’라는 그림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피카소는 그녀의 내조를 받으며 90세가 넘도록 예술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베컴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 가장 그리운 영국음식은 ‘장어젤리’라고 했다. 그게 혹시 베컴표 예술프리킥과 매끈한 피부의 비결이 아닐까? 베컴과 피카소가 장어 덕을 봤는지 아닌지는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들이 장어를 즐겨 먹었던 것만은 사실이다.장어는 뱀장어(민물장어), 갯장어(하모), 붕장어(아나고), 먹장어(곰장어)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효능은 엇비슷하다. 황필수의 ‘방약합편’ 약성가에서는 장어가 폐병을 고치고 해충을 없애며 치질과 부스럼에 특효가 있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오장의 허손을 보하고 피로를 다스린다고 나온다. 장어의 지방성분 중 대부분이 불포화 지방산이기 때문에 여름철 원기회복과 성인병 예방에 좋다. 또 뱀장어100g에 들어있는 비타민A는 계란10개 속의 양보다도 많아서 감기 및 야맹증을 예방하고 몸의 저항력을 기른다. 또 풍부한 비타민 E가 체내의 산화작용을 억제하여 노화를 방지한다.
심신이 허하니 나도 장어 소금구이 한 마리 먹고 본격적으로 폭염을 대비해야 겠다. 차를타고 분당에서 태재고개를 넘어 광주쪽으로 가다가 강남300이라는 골프장 가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작은 숲속에 집이 한 채 있다. 이름도 ‘숲속 장어촌’(031-718-3158)이다. 저녁을 먹으려고 7시에 도착 해서 대기노트에 이름을 적었다. 이 집의 뒤쪽에 있는 작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다 보니 8시가 훌쩍 넘고 그제서야 우리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의 능숙한 장어 손질현장이 눈에 띈다. 비스듬히 세운 도마에 꼬챙이로 아가미 부분을 찍어 고정시키고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한번에 발라낸 후 머리와 살을 분리한다. 살은 그대로 핏기만 닦아 접시에 착착 쌓고 손님상으로 직행. 머리와 뼈는 한통으로 몰아넣는다. 하루 장사가 끝나면 모아둔 머리와 뼈는 하룻밤을 푹 고아서 액기스를 만든다.
둘이서 장어1kg을 시켰다.(38000원) 테이블에 숯불과 석쇠를 먼저 올리고 살이 실한 장어 2마리가 나온다. 장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먹기 좋게 구워주니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젓가락을 들고 침 삼키며 바라보는 일뿐이다. 껍질이 석쇠에 맞닿도록 올려놓고 살 쪽에 소금을 뿌린다. 뜨거운 숯불의 향이 살속에 스며들고 노릿하게 익어가는 장어는 윤기가 좔좔 흐른다.
‘이제 드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튀김을 한 것마냥 껍질은 바삭하고 탱탱한 살에선 육즙과 기름기가 주욱 흘러나온다. 조금도 비릿한 맛이 없다. 담백하고 고소한 것이 아직 목에 넘어가지 않았는데도 힘이 불끈 솟아나는 기분이다. 생강채를 올리고 깻잎 절임에 싸서 먹으니 한 마리를 다 먹도록 느끼한 줄을 모르겠다.
정말 장어를 먹어서 그럴까? 또렷하게 힘이 난다. 고작 500g짜리 뱀장어 한마리가 제 몸보다 100배나 더 무거운 나를 이리 기운나게 하다니. 하지만 아무리 보양식이라도 과유불급. 성질이 차고 기름진 장어를 무턱대고 많이 먹다보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배탈로 고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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