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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싶다면 내 서재를 바라보라”

물조아 2007. 10. 4. 10:58

마이클 더다(Michael Dirda·59)는 서향(書香)에 흠뻑 젖으려 이 고즈넉한 동네를 골랐겠구나 싶었다. 미 워싱턴 DC 근교 실버 스프링 자택 1층 거실에 자리 잡은 서재는 4면이 책이었다.


더다는 1978년부터 워싱턴포스트 서평섹션(Book World)에 30년째 책 리뷰를 써온 서평전문기자다. 1993년 서평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어릴 적부터 책에 탐닉했던 과거를 돌아본 자서전 ‘오픈북’(An Open Book·을유문화사)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하다.


더다는 “서재를 나 자신이자 나의 과거”라고 했다. 4m×8m쯤 되는 이 공간엔 주로 문학·예술 책들이 쌓였고, 한 구석엔 단테의 흉상이 방문객을 쳐다봤다. 덮개가 뜯겨나간 중고 피아노도 서재와 어울렸다. 집 안 통틀어 장서는 1만5000권쯤 될 거라고 했다.


서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게 위안을 주는 나의 과거다. 문화와 교양, 사려와 이성, 영감과 성찰을 선사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나 자신이자, 당신(손님)에게 나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 서재에서 얼마나 머물고, 독서와 서평은 어떻게 하는가? “보다시피(1층 거실과 그 옆방, 2층 부부 침실과 아들들 방, 3층 다락과 지하창고 어디건 책들로 꽉 차있었다) 온 집안이 도서관이고, 어디서건 읽는다. TV나 영화는 거의 보지 않고, 클래식·재즈는 즐겨 듣는다. (그는 정명훈 남매를 좋아하고 그들 어머니의 교육열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했다.) 컴퓨터는 막내 아들(17)이 게임을 너무 오래 할까봐 감시하려고 거실에 뒀고, 대학 들어가면 치울 작정이다. (웃음) 서평은 1층 서재와 2층 침실에서 쓴다.”


― 무슨 책을 주로 읽는가? “사이언스 픽션, 셜록 홈즈 같은 탐정 소설, 유령(ghost), 미스터리, 판타지 모두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다른 책도 훑어 보긴 하지만, 매주 두 권 정도 정독하고, 한 권 이상 서평을 쓴다. 나는 완독가(slow reader)다. 잘 아는 작가의 책이라 해도 그 이면을 읽어내려 한다. 입술을 움직여가며 읽고 세부 표현도 기억하려 애쓰는데, 그래야만 책이 나의 일부가 되고 내 스스로 원기도 찾고(refreshed) 정보도 얻는다. 순전히 재미를 위한 책도 있지만, 읽고 쓰는 게 인생인 내 입장에서 책은 정독해야 한다고 믿는다.”


― 책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1층 거실에 예술·고전 책을 주로 보관한다. 도서관이나 학교에도 기부한다.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줬는데, 가끔 그들에게 별로 쓸모가 없다는 점은 서운하다.”


― 지난달 한국에서도 출간된 자서전 ‘오픈북’엔 초등학교 6학년 때 독방을 얻은 게 행운이었다고 썼다. “넉넉지 않은 집안의 3녀1남중 외동아들이었는데, 별채에 의자·책상이 있는 독방을 갖게 됐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매주 헌책방 4~5곳을 돌았다. 헌 책방에서 세일할 때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주로 공략했는데, 그 취미는 여전하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이 시대엔 그런 낭만을 잃어버린 것 같다.”


― 서평가로서 특별한 기호가 있는가? (그는 소설보다 역사·자서전을 좋아하게 됐다고 책에 썼다.) “정치·경제 서적은 안 쓰고, 문학·예술 같은 문화 관련 서적 서평을 한다. 젊을 때는 시집·소설 같은 픽션이 좋았다. 나이 들수록 삶을 성찰하고 무엇이 인생에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 서평가로서 자신만의 원칙은? “촉각을 세워(sensitively) 책에 접근하는 것이다. 저자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다른 시각에서 느낄 만한 것은 없는가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저자들을 좋아하고 이해하려 하지, 그들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는 저자들을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풍조가 퍼져있지만, 자기 과시를 위한 턱없는 비난은 문학과 예술에 해악이다.”


― 부친이 “너무 오래 공부하면 못 쓴다(Study long, study wrong)”라고 말씀했다고 책에서 회고했는데, 왜 도서관엔 그렇게 자주 데려갔던 걸까? (그는 아버지를 성마르고 무지한 사람으로 묘사해 놓았다.)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웃음) 그는 외동아들의 성공을 바랐고, 그것은 명문대 가서 부자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독서가 나의 도구가 되길 바랐는데, 내 생의 전부가 됐다.”


― 당신은 독서가로서 모험가(adventurer)가 아닌 미식가(gourmet)라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 “모험가는 모든 장르를 섭렵하려 달려들지만, 미식가는 여러 장르를 두루 읽되 남과 다른 독특한 취향이나 시각을 갖추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책을 골라낼 줄 안다는 뜻이다.”


― 10대는 독서를 위한 황금기라고 했다. “12~16세는 세상 문턱에 비로소 들어서고 인생의 이상형을 갖게 될 때다. 진정한 애독자, 헌신적인 애독자가 되는 중요한 시기다. 그 시기를 넘으면 이성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책 고르는 호르몬도 바뀐다.”


― 우리는 종이 책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고, 이후 세대는 스크린과 키보드에 점령될 거라고 했다.


“나 같은 노동자 계급 자식들에게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쇠이자 엔진이었다. 지금은 그 역할이 컴퓨터로 넘어 가고 있지만, 그 과정이 그리 강하고 빨리 진행되는 건 아니다. 책은 여전히 중요하고, 구세대의 정신적 가치와 낭만은 여전히 권위를 갖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나 블로그를 갖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지만, 책은 아무나 낼 수 없고 많은 이가 내고 싶어 하지 않는가.”(cho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