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음악이란… 10대땐 fun, 20대엔 job, 지금은 life”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32)의 이름은 한국인에겐 ‘음악신동’의 대명사다. 그는 8세 때 연주 활동을 시작해 24년여 연주활동을 거쳐 어느새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세인들은 아직도 ‘천재소녀 바이올리니스트’를 떠올리며 그의 활동을 주목하고 또 격려한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사라 장 리사이틀도 무대와 객석 사이에 따뜻하고 친밀한 교감이 돋보인 음악회였다. 합창석까지 꽉 채운 2500여 명의 관객은 여동생, 딸 혹은 누이의 발표회처럼 몰입해 악장 중간에 흔히 쏟아지는 기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날 전반부에 파가니니, 비탈리에 이어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편곡한 현대창작곡을 연주한 그는 연분홍 드레스 밑자락을 발로 툭툭 걷어차거나 상반신을 제치며 온몸이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2부에선 검정 반짝이 드레스차림으로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2번을 연주한 뒤로 객석의 열띤 박수갈채에 화답하듯 그는 쇼팽, 카차투리안의 곡 및 영화 ‘여인의 향기’ 중 탱고 등 앙코르로 3곡을 연주했다. 공연장 로비는 이날 연주회 전엔 사라 장 리사이틀의 안내포스터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팬들로, 공연 후엔 사인 행렬로 붐볐다.
사라 장은 연 100여 회의 꽉 짜인 연주 일정 중에 매년 1∼2회 내한공연을 마련해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의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이후 10개월 만인 12월엔 서울을 포함해 8개 도시 순회 독주회를 가졌다. 스타 연주자와의 인터뷰는 지난 13일 숙소인 호텔에서, 또 16일 공연 전후에 진행됐다.
대전에서 공연한 10일이 생일이었던 32세 바이올린 스타에게 첫 질문으론 좀 고약하지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물었다.
“거리에서 어느 여성에게 물어봐도 나이 드는 걸 좋다 할 사람은 없을 걸요.(웃음) 그러나 음악가로선 나이 드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즐기고 좋아하는지, 또 잘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연주자로선 ‘나이듦’을 즐기고 있다는 그에게 재차 “나이와 더불어 음악생활이 어떻게 변해왔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10대까지 ‘에브리싱 이즈 저스트 펀’, 그냥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학생시절엔 연주활동하면서 학교공부, SAT 등 대학 진학 준비하느라 너무 바빴어요. 20대 이후 음악은 잡(Job), 나의 일이죠.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이제 30대 들어 음악은 내 라이프(Life)가 됐어요.”
아직도 ‘천재소녀 사라 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지적에 그는 “이젠 그런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실 음악이란 게 어제 잘한 것보다 내일 연주가 중요하잖아요. 물론 비행기 여행의 연속인 생활이라 가끔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 음악가라는 사실이 즐겁고 또 재미있어요.”
‘음악이 생활’이라는 그는 “이즈음 연주 일정까지 ‘퍼스널하게’ 관리하게 되면서 연주가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고 웃었다.
“아주 어려선 아빠 엄마가 매니저였고 한 때 전문 매니저들이 정하는 대로 유럽이며 아시아로 연주하러 다녔어요. 그러나 요즘은 연주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일정을 잡아요. 지휘자가 좋거나, 몰라도 알고 싶을 때, 또 오케스트라와의 히스토리가 있을 때 협연해요. 무슨 곡이든 연주해도 좋다면 새로운 레퍼토리를 시도해볼 수 있어 ‘예스’라고 하죠.”
무대 위에서 에너지 넘치는 강한 이미지를 펼치는 그는 인터뷰 내내 무슨 질문이든 주저함 없이, 가끔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의 의사를 또렷하게 밝혔다.
―내한공연 일정이 대부분 연말이던데….
“연말이 되면 미국, 유럽은 온통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합창교향곡’ ‘메시아’ 같은 연말 레퍼토리 위주라 일반공연은 거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연주자들은 연말에 한국, 일본, 중국 등지로 아시아 공연스케줄을 많이 잡게 돼요.”
―무대가 대부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입니다. 독주회는 2009년 이후 3년 만이라죠.
“협주곡 레퍼토리가 좋아요. 물론 독주회에서 나 혼자 무대에 섰을 때보다 100여 명 풀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연주에 익숙하고 또 내 캐릭터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협연무대 위주로 활동해 그런지, 협연 자체가 즐거워요.”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오케스트라라면….
”아무래도 첫 번째가 태어나 자란 도시의 오케스트라이며 자주 협연한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지요. 지난 9월 2만여 명 관객이 들어찬 할리우드볼에서 협연한 LA필도 9∼10세 때 첫 연주 이후 줄곧 호흡을 맞춰온 가까운 오케스트라고요. 지난 2월 내한공연을 함께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도 인연이 각별해요. LSO 단원 중 몇 명과는 같이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며 친하게 지냅니다.”
―그동안 슬럼프도 있었을 텐데….
“16세까진 정말로 그저 연주활동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러다 16세 때 너무 힘들고 무작정 쉬고 싶더라구요. 예쁘게 옷 차려입고 파티 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쉬고 싶다고 했더니 매니저가 그러더군요. 일단 계약돼 있는 연주 일정을 다 마무리 짓고 쉬라고요. 결국 휴가를 받은 게 2년 후 18세 때였어요.(웃음)”
2년의 기다림 끝에 맞은 휴가 때 뭐하며 지냈을까.
“정말 아무것도 안했어요. 집에서 자고 먹기만 했어요. 꽉 끼는 연주복에 몸을 집어넣으려면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거든요. TV도 보고 뉴욕, 런던에 가서 친구도 만났어요. 처음엔 바이올린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2주쯤 후 바이올린에 손이 가더라구요. 그런 생활 한 달 만에 이래도 되나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 일 이후 매니저가 쉬고 싶으면 언제라도 미리 말만 하라고 했지만, 그 일 이후 쉬어본 적이 없어요.”
16일 서울 독주회 이후 내년 1월 4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리는 2013년 첫 연주회 이전까지 보름여 동안 연주 일정은 없다.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틈틈이 내년에 연주할 곡을 연습하려면 연주자에게 완전한 휴일이란 없는 셈이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신을 이끈 스승이라면….
“기본 테크닉은 줄리아드 딜레이 선생이죠. 그 밖의 부분에선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은 굉장히 퓨어(pure)하고 꾸미는 것을 싫어하세요. 대부분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걸 고치라고 지적하지만, 그분은 내게 늘 ‘와이(Why?)’란 생각을 갖게 만드세요. ‘왜 포르테로 연주하느냐’는 식으로 물어보세요. 아주 어릴 때 많이 당황했어요. 악보에 그렇게 적혀있는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거든요. 선생님은 그 표시는 작곡가 아닌 출판사가 할 수도 있고, 연주할 때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연주자로 하여금 생각을 일깨우시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멘토는 누구입니까.
“소리를 기교적으로 꾸미지 않고 온몸으로 소리를 내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존경합니다.”
지휘활동을 병행하는 연주자도 적지 않기에 그도 지휘에 관심이 있는지 속마음을 떠봤다.
“사실 음악친구 조슈아 벨, 막심 벤게로프도 요즘 지휘를 해요. 그러나 저는 좋은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연주 자체가 좋습니다. 아직 연주하지 못한 레퍼토리도 많아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음악가로서 생존작가의 창작음악 같은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소개해야 할 책임감도 느끼고요. 음악인 중엔 폴리티컬하게 활동하는 분도 더러 있지만 저는 음악인으로서 스탠스를 지키며 줄곧 음악 그 자체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그는 특히 인연이 남다른 지휘자로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리카르도 무티를 지목했다. 사라 장은 주빈 메타를 ‘장갑같이 완벽하게 (호흡이) 잘 맞는 지휘자’라고, 쿠르트 마주어의 경우 ‘음악세계의 할아버지’라고 표현했다.
“주빈 메타는 제 음악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기회를 주신 분이죠. 뉴욕필, 베를린필, 비엔나필과의 첫 협연도 주빈 메타와 함께 했어요. 바이올린 독주자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해주신 분이거든요. 주빈 메타와의 무대는 연주가 너무 쉬워요. 그분과는 교감이 너무 잘 맞아 안보고도 또 리허설없이도 공연이 가능할 정도지요.”
사라 장은 리카르도 무티가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 중이고 오페라 연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11세 때 첫 협연 후 여러 도시를 같이 다니며 연주한 쿠르트 마주어의 경우, 두 달 전 85세 생일 때 독일 라이프치히의 기념콘서트 무대에도 출연했다고 밝혔다. 쿠르트 마주어는 지난봄 파리 연주 때 지휘대 바가 부러지고 객석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수개월 활동을 못했고 그 후유증인지 지난 9월 파리서 프랑스국립오케스트 공연때 지휘대를 오케스트라 깊숙이 설치하는 바람에 연주자도 무대 안쪽으로 들어가 연주했다고 일화를 공개했다.
―사라 장스타일의 음악이라면….
“드라마틱하고 이모션하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연주를 추구해요. 악기를 목소리 삼아, 연기자는 아니지만 연기를 무대에서 펼치고 싶어요.”
12월 내한독주회(왼쪽 사진) 때 그는 18세기 비탈리의 ‘샤콘느’부터 20세기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곡들을 연주하면서 곡마다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자평했다. 비탈리의 곡은 슬프게, 프로코피예프 곡은 어그레시브하고 때로는 일부러 거친 소리도 내며 공격적으로 연주해 곡마다 연주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연주 중 실수하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사라 장은 단호하게 “실수는 없다”고 답했다.
“나만 아는 실수는 있어도 남들이 알 정도의 실수는 결코 하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 어떤 곡이든 내 자신이 편할 때까지, 그러니까 자면서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완전히 배도록 연습해요.”
―연주 당일 몹시 아프면 어떻게 하죠.
“아프면 약 먹고 무대에 올라가요. 연주는 무조건 해야 해요. 언젠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는 첫 남편이 죽었을 때도 연주했어요. 어려서부터 엄마와 모든 사람들로부터 연주 일정은 따라야 한다고 배웠어요. 연주 취소는 결코 선택사항이 아니라고요.”
―2006년 뉴스위크 선정 ‘세계 20대 여성지도자’, 2008년 세계경제포럼의 ‘세계의 젊은 리더’는 연주자로서 좀 색다른 경력입니다. 2012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예술 부분의 탁월한 지도자로도 선정됐다죠.
“예술가로서 어린이, 학생에 대한 음악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교육은 음악인으로서 의무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미국대사관의 예술대사로서 세르비아, 콜롬비아에서도 어린 학생들을 만났어요.”
―이번 독주회서 연주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처럼, 현대 창작곡도 자주 연주하나요.
“저 자신도 듣기 힘든 현대음악은 좋아하지 않아요. 공연장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온 관객을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아요.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곡 위주로 선곡하죠. 그러나 협연 때는 현대창작곡 연주가 좀 힘들어요. 어려서 경제가 나쁠 때 현대곡 연주는 안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알 수 없었어요.(웃음) 불황에는 다들 문화생활비부터 줄이니 그나마 친숙한 레퍼토리를 연주해야 관객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잖아요.”
―요즘 해외콩쿠르에서 한국 음악인이 두각을 나타내고 연주도 활발합니다. 해외활동 중 그런 열기를 실감하나요.
“연주무대서 다른 솔리스트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요. 다만 어디 가나 ‘싸이’ 이야기예요. 런던에서 또 독일 호텔에서 TV에 나오는 ‘싸이’를 보면서 글로벌코리아의 위상을 절감합니다.”
―콩쿠르 경험이 전혀 없지요.
“전 그런 경쟁은 몰라요. 콩쿠르 입상을 계기로 커리어를 시작하던 10∼20년 전과 달리 요즘은 콩쿠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도 콩쿠르 2등이었다죠. 콩쿠르 1등은 누군지 기억도 못하고, 2등이 더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화장, 드레스에서 ‘사라 장 스타일’이라면.
“패션에서 한국스타일과 서구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언젠가 한국서 한국식 화장, 머리에 드레스차림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서양 매니지먼트 회사서 단 한 장도 고르지 못하겠다고 해서 서양팀이 재촬영했어요. 화장만 해도 한국은 화장 안 한 듯 연한색, 미백크림을 많이 쓰는 반면, 서양에선 태닝한 듯 까무잡잡하게, 강한 화장을 선호해요. ‘에브리싱 이즈 스트롱’이죠. 또 한국선 쌍꺼풀 수술을 많이 하고 내게도 쌍꺼풀 수술을 권하더군요. 그러나 미국 친구들은 절대로 쌍꺼풀 없는 눈을 건드리지 말래요.”
―두각을 나타내는 30대 초반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점에서 힐러리 한, 재닌 얀센 등이 라이벌로 거명되기도 하죠.
“독주자들은 스케줄이 달라 마주칠 기회가 드물어요. 데뷔 후 한동안 같은 동양 출신으로 줄리아드, 뉴욕필 협연 등 이력이 비슷한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와 저를 많이들 비교했어요. 그러나 라이벌이라기보다 기획사, 연주일정 같은 음악활동 정보를 주고받는 친구 사이예요. 미도리는 뉴욕서 로스앤젤레스(LA)로 옮겼어요. UCLA 교수이며 연주자로 활동 중인데 가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아요. 얀센은 그의 옛 남자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와 듀오무대를 가졌을 때 얀센이 사운드체크하러 들어와 본 적이 있어요. 힐러리 한과는 만난 적이 없어요. 다만 힐러리 한이 2년 단위로 1년 반 활동하고 나머지 6개월을 쉬는 식으로 연주일정을 잡는다니 그건 참 잘하는 것 같아요.”
한동안 한국이름 장영주와 사라 장을 병기했지만 서로 다른 연주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은 사라 장으로 단일화했다. 1997년 선보인 앨범 제목이 ‘심플리 사라’다. 이달 내한순회독주회 때 “다음 연주장소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본 어묵바와 떡꼬치가 너무 맛있었다”는 사라 장. 음악활동 틈틈이 연주도시의 거리를 산책하거나 추억의 명화부터 최신작까지 영화 관람을 즐기고 드레스, 구두 등의 쇼핑을 즐긴다.
인터뷰 = 신세미 부장(문화부) ssemi@munhwa.com
▲ 세계 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어제의 잘한 연주보다 내일의 연주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연간 100회 공연을 통해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