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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미스에 주목하라

물조아 2009. 11. 9. 06:38

신현만의 인재경영 / ‘골드미스(gold miss)’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는 집단 중 하나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미혼 여성인 이들은 대개 중견기업과 대기업 직원이거나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경제력을 토대로 개성을 추구하는 30~40세여서 패션과 문화·레저·외식 등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고급 취미를 즐긴다. 경제적 여유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으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구매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구매세력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골드미스는 단순 구매세력을 넘어 기업의 관심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은행·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 인사에서 과장급으로 승진한 직원 가운데 52%가 여성이었다. 특히 우리은행은 여성이 79%를 차지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여성 비율이 절반을 웃돈 지 몇 년 됐고, 입사해서 과장이 되기까지 7∼8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은행에선 남성 간부보다 여성 간부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이 회사 조직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현상은 비단 금융계뿐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우 전체 직원 1783명 중 여성이 73%인데, 임원 네 명 중 두 명이 여성이고 차장급 이상 간부 353명 중 여성이 197명이다. 이곳엔 2000년 출범 당시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었고 여성 관리자도 전체 관리자의 절반이 채 안 됐다. CJ그룹은 최근 과장급 이상 간부 중 여성의 비율이 12%에 육박한다. CJ그룹은 여성 간부 비율이 4년 안에 2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기업의 여성 간부가 모두 골드미스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 간부 중 상당수가 골드미스이고, 골드미스는 이 중에서도 선발그룹에 속해 있는 파워엘리트다.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업무적조직적 성취 욕구를 갖고 있다. 일을 즐기고 성과를 추구한다.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남성 중심이던 승진과 보직 배치에서도 빠르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골드미스와 비슷한 개념은 미국에도 있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과 댄 킨들러 교수가 2006년 제시한 ‘알파걸(alpha-girl)’은 미국 중·고등학교 20% 이내의 상위권 여학생이 갖고 있는 특성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적극적이고(active), 리더십(leadership)이 뛰어나며, 끈기(patience)가 있다. 또 강한 열정(heart)과 야망(ambition)을 갖고 있다. 알파걸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강점이 녹아 있는 여성들이다. 댄 킨들러의 조사에 따르면 알파걸 어머니 가운데 75% 이상이 진취적인 커리어 우먼이었다. 이들은 또 아버지를 역할모델로 삼고 있고, 아버지로부터 남성의 일하는 방식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접했다. 알파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여성성과 후천적으로 습득한 남성성이 조화를 이룬 양성성의 소유자로 자부심과 성취욕이 강하고, 주체적이며,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른바 ‘독종 스타일’이다.


최근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골드미스는 이 같은 알파걸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직장 동료나 고객과 관계에선 여성 특유의 감성적 능력을 발휘해 잘 돌본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맡으면 강한 추진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이렇게 남녀의 강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보니 업무성과가 매우 뛰어나다. 그동안 여성은 남성적 기업풍토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뒤처져 왔다. 경쟁이나 성과, 조직과 충성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특성이 없는 여성은 중간간부조차 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골드미스가 남성과의 경쟁에서 앞서면서 ‘실무는 여성, 관리는 남성’이라는 한국 기업의 오랜 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골드미스는 이제 기업에서 여성을 성차별이 아니라 성과 향상 차원에서 접근하게 만들고 있다. 2004년 미국 여성기업 조사기관인 ‘캐털리스트’가 포춘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위층에 여성이 많은 회사일수록 경영실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17.7%)은 여성 임원이 적은 기업(13.1%)을 훨씬 웃돌았다. 배당수익과 시세차익을 합한 주주총수익률에서도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127.3%)은 적은 기업(95.3%)을 크게 앞섰다. 국내 제약회사에서 영업실적 상위권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제약회사들은 성과 때문에 지속적으로 여성을 확충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기업이 매출을 늘리고 성과를 개선하려면 골드미스의 존재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회사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드미스는 기업 성과 개선에 한몫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추세로만 본다면 골드미스가 머지않아 기업 내 핵심 파워집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뿐 아니라, 이들 중에서 임원과 CEO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경영자의 관점과 의지에 따라 골드미스는 기업 운영의 중요한 카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