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남·녀 불평등’ 풍자로 대박…개콘 박성호·황현희·최효종
‘데이트 남·녀 불평등’ 풍자로 대박…개콘 박성호·황현희·최효종
[경향신문] 글 박주연·사진 김문석기자 ㆍ“남자들 대리만족… 여자친구가 달라졌대요”
연애 중인 젊은 남녀가 여행길에 오른다. 승용차 주인인 남자는 주유소에 들러 지갑을 열고 기름을 ‘만땅’으로 채워 넣는다. 입맛 없다던 여자는 휴게소가 나타나자 왕성한 식욕을 과시한다. 또 남자가 돈 낸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끔 여자 쪽을 본다. 여자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울컥, 화가 치민다.
KBS 2TV <개그콘서트>(일 오후 9시5분)의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 화제다.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데이트할 때 받아 온 성차별을 풍자한 코너다. 박성호(35), 황현희(29), 최효종(23) 등 이 코너의 출연진은 매회 시위하듯 불만을 쏟아낸다.
“운전은 내가 한다. 기름값은 네가 내라!”거나, “커피값은 내가 내고, 쿠폰도장 니가 찍냐!”라며 목청을 높인다. 마지막엔 남성 방청객들까지 일으켜 세워 구호를 함께 외친다. 일상을 비틀어 쏟아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4일 오후 KBS 분장실에서 만난 박성호, 황현희, 최효종. 이들은 “쩨쩨해 보일까봐 남자들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불만을 코믹하게 표현하니까 대리 만족을 얻는 것 같다”고 나름대로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외국에서는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가 일반적인데 우리는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게 관례잖아요.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고…. 군대 문제 등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그건 싸우자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까, 우리는 남자들의 불만을 귀여운 앙탈 수준으로 비쳐지게 표현하자는 거예요.”(박성호)
이 코너의 출발은 연출자인 김석현 PD가 황현희에게 준 미션에서 비롯됐다. 정부부처에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으니 역 성차별을 개그 소재로 다뤄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황현희는 거대 담론을 배제하고 데이트 중 겪는 소심한 남자들의 억울함(?)에 초점을 뒀다. 박성호는 여기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캐릭터를 추가했다. <개그콘서트>의 또 다른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요즘 ‘행복 전도사’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효종도 가세했다. 황현희는 붉은색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띠를 둘렀다.
그러다 보니 정치색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많다. 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투쟁의 이미지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 대표와 민노총을 떠올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대로 강 대표의 모습을 흉내 낸 박성호가 언젠가 눈 밑 점을 그리지 않은 채 출연을 하니까 인터넷 게시판에 난리가 났다. “민노당의 압력에 의해 점을 뺀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박성호에 따르면 그날따라 깜빡 잊고 그리지 않았을 뿐이다.
박성호는 강 대표가 경남 사천에서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실이나 공중발차기 등으로 지금은 사라진 YTN 돌발영상에 단골 출연(?)한 것 등을 줄줄이 꿰고 있다. 민노당 측도 강 대표 패러디가 싫지는 않은 눈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개그 소재는 섹스와 정치예요. 사실 정치판이 코미디보다 더 재밌잖아요.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가장 재미있는 고품격 개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그콘서트에서 정치인을 친근한 캐릭터로 묘사하면 젊은 세대가 정치에 한 발 다가가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황현희)
실제 TV를 통해 방송되는 것은 5분 안팎. 하지만 이들이 이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치열하다. 매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주 사흘 이상 만나서 연습한다. 최효종은 “외치는 문구만 매번 200~300개씩 짠다”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거리의 연인들을 하루종일 관찰하기도 한다. 이 코너와 관계 없이 평소 신문과 뉴스, 시사프로를 챙겨 보는 것도 기본이다.
“코너와 출연자가 한정돼 있으니까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도태됐다는 것은 그만큼 처절하게 노력하지 않았다는 방증이에요.”(박성호)
한편 ‘남보원’의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내가 밥값을 내니까 여자친구가 커피값을 내더라”거나, “내가 커피값을 지불했더니 진동벨이 울리자마자 여자친구가 커피를 받으러 가더라” 등의 이야기가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밀려들고 있다는 것.
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방송 소재로 활용해 달라는 요청도 폭주한다.
방송 두 달 만에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가 된 ‘남보원’. 그리고 이 ‘남보원’을 빛내고 있는 세 남자가 앞으로 또 어떤 애교 섞인 남·녀·불·평·등의 사례를 폭로할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