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김봉길저 설상가상으로 2003년이 되면 대학진학 작년 학생수마저 크게 줄어 대학정원 미달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 해방기
해방 당시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대학이래야 관립 경성제국대학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국립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
○ 50년대 - (6.25사변)
전시 연합대학은 국립대학의 모체가 되었다. 52년 경북대, 전북대, 전남대 도립제두 초급대학. 53년 부산대, 충남대. 53~54년 대학들도 터를 옮기고 터를 잡기에 바쁜 기간. 55년부터 대학 지망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수요확대에 따른 대학들의 고도성장시대가 개막되는 시점이다.
전쟁을 겪고나니 「평생두고 간직할 수 있는 재산은 돈이 아니라 학력뿐이다.」라는 말이 유행되었다. 아무리 산간오지일지라도 소 팔고, 논 팔아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오죽했으면 그 시절의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다.
○ 60년대 - (61.5.16 군사쿠데타)
5.16 군사쿠데타 후 대학의 편제를 양보다 질을 우선한다며 학과 수는 증설하고 학과 정원은 감축하는 학과와 정원의 재 책정 인가가 있었다.
69년에는 실력 없는 학생들의 부정입학 방지를 위해 대학입학 예비고사제 실시가 제도화되었다. 학생들은 혁명 열기에 휩싸여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아래 연일 남북대학생 회담 추진 시위~
○ 70년대 - (유신통치시대)
졸업학점 160학점에서 140학점으로 인하, 계열별로 모집하고 부전공과 복수전공제를 시행하는 제도이다. 70년대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시대였다. 더불어 대학도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다.
○ 80년대 - (5공, 6공, 문민시대)
7.30 교육개혁 조치를 통해 과외수업금지, 전일제 수업, 대학 본고사 철폐를 전제로 졸업정원제 실시와 정원의 130% 입학한국방송통신대학의 4년제 승격 등 ~ 81학년도는 80년도에 비해 약 10만 여명이 증가 했다. 이러한 제도는 88년도에 폐지되었다. 84년5월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 대학생 수가 1백만 명을 돌파하게 되었다.
84년에는 학도 호국단이 해체되고 학생의 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발족하기 시작하여 이후 학생운동의 근간 조직이 되었다. 이때 민민투(반제 반파쇼 민족 민주투쟁위원회)와 자민투(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 신설~ 87년에 총, 학장 임명제를 선출제로 바꾸었다.
○ 90년대 - (회복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90년2월 문교부는 대학의 학교장을 총장으로 부르기로 통일했다. 91년1월 문교부를 교육부로 명칭변경. 94년 대학종합평가 인정제 실시. 94년 4년제 대학 142개교에 교수는 42,321명이고, 학생수는 1,157,000명이었다.
남 앞에서 으스대거나 ‘체’하려는 과시욕구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편승’효과는 그 못지않게 고약하다. 도무지 형편이 안 되는 소득계층들도 ‘축’ 에 끼이기 위해 덩달아 분수에 넘는 소비를 일삼는다. 96년 주요 소비재 수입동향: 모피의류, 화장품, 골프용품, 휴대폰, 승용차, 주류, 위슨키, 통조림 등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