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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영혼의 선장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물조아 2010. 3. 10. 14:56

<이미도의 인생을 바꾼 명대사>  나는 내 영혼의 선장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드리머

 

[문화일보]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12세 때부터 결핵을 앓았습니다. 10대 후반에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고요. 시 ‘굴하지 않는다(Invictus)’는 그 무렵 그가 병상에서 쓴 작품으로, 라틴어인 ‘인빅투스(invictus)’는 그 뜻이 ‘불굴의(invincible)’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세상이 온통 지옥처럼 캄캄하게 자신을 엄습하더라도 절대 굴하지 않는 영혼을 주신 신에게 감사한다고 노래했습니다. 생활의 그악스러운 손아귀에서도 신음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겠다고 노래했습니다.

 

시 ‘굴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연은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입니다. 인생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인생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One thing is certain, life is filled with uncertainty)는 것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에서 한 가지 확실성을 발견할 수가 있지요. 그것은 정녕 운명이라는 작은 배가 거대하고 거친 풍랑에 의해 위태로울 때에도 그 배의 키를 쥐는 선장이야말로 ‘나’ 자신이라고 선언하는 시인의 의지와 집념의 힘이지요.

 

영화 ‘드리머(Dreamer)’는 ‘인빅투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입니다. 스페인어로 ‘드리머(dreamer)’의 뜻에 가까운 단어가 ‘소냐도르(Sonador)’라고 한다는데요, 영화의 주인공인 경주마도 이것의 애칭인 소냐로 불립니다. 소냐는 어느 부호가 소유한 말입니다. 그런데 승리의 순간이 코앞에까지 다가온 어느 중요한 시합에서 이 경주마가 발이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냉정한 마주는 더 이상 달릴 수도, 걸을 수도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안락사를 명령합니다. 조마사(調馬師) 벤은 마주의 뜻에 따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벤의 어린 딸 케일(다코타 패닝)의 반대는 완강하기만 합니다. “인생은 언제나 새 기회를 준다(Life always gives you another chance)”는 진리를 어릴 때부터 깨친 케일은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지요.

 

걷기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말을 다시 달리게 하려는 케일의 집념이 어찌나 강하던지 벤은 결국 딸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아뿔싸, 마주는 안락사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벤을 해고합니다. 급기야 벤은 소냐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퇴직금마저 포기합니다. 그때부터 부녀는 소냐를 극진히 치료하고 훈련시킵니다. 소냐가 다시 달리게끔 힘을 준 케일의 귓속말, 즉 “넌 위대한 챔피언이야. 네가 달릴 땐 지축이 흔들리고, 하늘이 활짝 갰어. 네가 승리하는 자리에서 네 등에 꽃 담요를 올려줄게(You are a great champion. When you ran, the ground shook, the sky opened. You’ll meet me in the winner’s circle where l will put a blanket of flowers on your back)”를 소냐가 알아들은 걸까요?

 

모든 이의 예단을 깨고 소냐는 유서 깊은 브리더스 컵(Breeders’ Cup)에 출전합니다. 그리고 보란 듯 우승합니다. 소냐와 케일이 교감하면서 부러진 뼈(bone)가 단단하게 아물고, 둘의 유대(bond) 또한 단단해진 결과일 것입니다. 영화 ‘드리머’는 실화입니다.

 

작가·외화번역가 기사 게재 일자 2010-03-10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