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Welcome to Why?] '연봉 10억' 토익 강사 유수연씨

물조아 2008. 11. 8. 13:00

 

"학벌과 영어때문에 물 먹는 평범한 젊은이들 심정 잘 알죠" , 대입시험서 10점대 영어점수 생존 위해 죽기살기로 공부, 토익 시장의 스타로 떠올라


"전 1등도 못해 봤고 일류대도 못 나왔어요. 그래서 취업 전선에 선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제 강의에 학생들이 몰리는 건 저처럼 보잘것없이 출발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죠."


'연봉 10억' 토익강사 유수연(36)씨는 자신의 인기 비결이 "생존 때문에 영어를 해야 하는 20대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로 YBM 시사영어사 대표강사인 유씨의 한 달 수강생은 1500명이다. 2001년 학원가에 뛰어들어 2년 만에 연봉 1억원을 받았고 2년 전부터 연봉 10억원을 번다. 출판인세와 외부 강의료가 포함된 액수다.


"10억원은 물론 큰 액수죠. 하지만 그 돈에는 맨몸으로 세상을 헤쳐온 제 36년이 들어있어요. 빌 게이츠가 제가 돼서 살아간다 해도 저보다 더 치열하게 살지 못했을 거예요."


재수(再修)로 강남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유씨가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선택한 길은 호주 유학이었다. "그대로 취직해 살아갈 걸 생각하니 숨이 콱 막혔어요. 확실하게 깨지면서 모든 걸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대입 학력고사 영어점수가 10점대(60점 만점)였고 '월·화·수·목·금·토·일'조차 영어로 말할 줄 몰랐던 유씨는 무작정 현지 어학원에 등록하고 영어책을 파기 시작했다.


"현지인 학생 9명과 번갈아 가며 대화했죠. 4~5시간 자면서 한 영화를 매일 3~4번 보니 2주 지나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을 다시 살라고 해도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3개월 만에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전문대에 편입해 한 학기 공부했어요."


떠나올 때 부모에게 받은 6개월치 학비는 금세 바닥이 났다.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장 뷔페 보조, 도서관 사서, 학교 식당 종업원, 관광비디오 목소리 더빙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1995년 귀국해 1학기를 마저 채우고 대학을 졸업한 유씨는 이듬해 영국 애스턴대 대학원에 합격해 영국으로 갔다. 미친 듯 공부하던 그에게 '부모가 하던 레스토랑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식구들은 매일 찾아오는 사채업자들을 상대하느라 탈진했고 살던 집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었다.


3남매 중 장녀인 그는 어쩔 수 없이 귀국해 레스토랑 경영을 맡았다. "수익이 잘 나는 호프집으로 바꿨어요. 제가 주방에서 안주도 만들고 서빙도 하고 시장도 봤어요. 호객 행위 하다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고요."


'어떻게든 살려놔야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매달린 호프집은 1년 만에 하루 매출 1000만원을 올렸다. 되살린 가게를 부모님께 넘겨드리고 유씨는 다시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도 끔찍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졸업 못 하고 한국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거기에서 죽겠다고 생각했어요. 죽을 각오로 버티다 보니 어느새 졸업할 때가 돼 있더군요."


석사를 마치고 2000년 미국 콜로라도주 로키산의 하얏트 호텔에서 근무하다 1년 후 귀국했다. 토익 시장이 몸집을 불리던 무렵이었다. 경영학 전공·호텔 근무 경험으로 비즈니스 영어에 강한 유씨의 강의는 입 소문을 듣고 몰려든 학생들로 넘쳐났다.


"저는 항상 제가 가진 패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도,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도, 예쁘지 못한 것도 모두 불만이었죠. 그렇지만 부족한 점을 채워가야 했기 때문에 전 늘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인기가 치솟으며 유명세도 치렀다. 2년 전 연예인들 학력위조 파문이 터지자 기자들이 학원으로 몰려들었다. 유씨는 "기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영국 대학에 전화해 졸업 증명서를 받아 곧바로 팩스로 보내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찍기 강사'로 부르는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저는 이 사회가 영어와 학벌로 물 먹이는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어요. 영어 점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빨리 경쟁력을 심어주려는 일이 왜 비하돼야 하나요. 제가 영어를 제일 잘하는 강사는 아니지만 저만큼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파악하는 강사는 드물 거예요."


유씨는 수입의 30%를 자신이 운영하는 '유수연 영어연구소'에 쓴다.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다. 최근 모 기업에서 거액의 몸값을 제시하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5년 계약에 30억원 조건이었다. 강의료는 따로 주겠다고까지 했다. 두 달간 고민하다 거절했다. 그에게는 30억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에는 외제차와 명품으로 휘감고 다 니는 부유층 자제들이 있죠. 하지만 전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해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섰으니까요. 치열하게 살다 보면 더 좋은 기회가 다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성공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유씨는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십중팔구 또 실패해요. 저는 실패할 때마다 반드시 그 실패를 갚아주겠다고 독기를 품었어요.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반전을 꿈꾸며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