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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노점상, 밤엔 호화갑부?

물조아 2008. 11. 3. 07:00

 

뉴욕 길거리 '감자깎는 기계' 파는 70대 노인의 이중생활, 최고급 아파트엔 온통 예술품 아내와 비싼 레스토랑 누벼, "60년 모은 푼돈을 무시 말라"


뉴욕시 유니언 스퀘어에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감자껍질을 깎는 74세의 할아버지 조 아데스(Ades)씨. 뉴욕 시내 곳곳의 길모퉁이를 바꿔가며 좌판을 펴는 노점상 '감자 깎는 신사(Gentleman the Peeler)'가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가 중 하나인 뉴욕시 맨해튼 파크 애비뉴(Park Avenue)에 침실 3개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거부라고 미 MSNBC 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아데스씨는 평소 고개를 숙인 채 감자나 당근 껍질을 벗기며 신나게 혼잣말을 한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파는 스위스제 야채 껍질깎이로 한번 당근 껍질을 벗겨보라고 권한다. "이 '야채 껍질깎이'는 스위스제~. 하나에 5달러(약 6500원)"라는 흥얼거림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5달러를 내미는 한 아주머니의 손을 외면하면서, 아데스씨는 "결코 녹이 슬지 않는 이 껍질깎이를 왜 여러 개 사야 할까요. 친구들에게도 줘야죠~" 라고 말했다. MSNBC 방송에 소개된 이 아주머니는 결국 4개를 샀다. 그가 이날 하루 야채깎이를 팔려고 벗겨낸 감자와 당근 껍질만 사과 상자 다섯 개 분량이다.


하지만 해가 지고 장사를 접은 뒤 아데스씨의 생활은 노점상과는 180도 다르다. 자신의 고급 아파트 복도에는 값비싼 미술작품이 가득 걸려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인 피에르의 레스토랑이나 장 조르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샴페인 뵈브 클리코를 마신다. 매일 저녁 아내와 함께 드는 저녁 한끼는 100달러를 훌쩍 넘긴다.


그에 대한 얘기는 이미 2006년 8월 고급 교양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에 소개됐고, 이후 미 언론 여러 곳에 소개돼 뉴욕에서도 명물이 됐다.


노점상으로서의 성공 비결이 있을까. 아데스씨는 베너티 페어에 "우선 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리를 최대한 많이 숙이고 혼잣말을 계속해서, 행인들이 '도대체 이 노인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인 그의 영국식 악센트와 약간 매부리코의 눈에 띄는 외모도 도움이 된다. 1000달러가 넘는 양복을 입은 이 영국 신사가 길거리에서 야채를 깎고 있는데 눈길을 주지 않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MSNBC는 "일부 사람들은 아데스를 영화배우 숀 코너리(Connery)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홀어머니의 7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15세 때부터 노점상으로서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폐허 속에서 찾아낸 낡은 만화책이 그의 첫 상품이었다. 그는 말솜씨와 재치로 2월에도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를 팔았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계속 노점상으로 탄탄대로를 걷다가,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직 아데스씨가 하루에 얼마나 버는지, 얼마나 이윤이 남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아파트와 호화스런 저녁 생활을 보고 놀라는 MSNBC 기자에게 그는 "60년 동안 손으로 모은 푼돈을 절대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야채 껍질 깎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아데스씨는 "행복의 비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MSNBC에 말했다.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