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우리사회 사실과 의견 구분 못해 단절”

물조아 2008. 9. 11. 07:35

‘나의 문학과 사회의식’ 강연… 소설가 김훈

 

“우리 사회,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이념적으로 인식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 편이냐 아니냐’, ‘내게 유리하냐 아니냐’로 인식합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소설가 김훈(60)씨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며 과학적 ‘사실’보다 당파적 ‘의견’에 의해 움직이는 우리 사회에 대해 은유적 일침을 가했다. 이날 ‘나의 문학과 사회인식’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삶, 소설과 글쓰기를 ‘사실에 대한 복무’로 일관되게 이야기한 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 있지만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수 없다”며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정의’를 강조했다.


대학교 2학년때 읽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압도돼 30여년이 지난 뒤 이를 ‘칼의 노래’에 담아냈다는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이순신의 지도적 역량이나 덕성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로 기록하는 리얼리스트의 정신에 놀랐다”며 “이순신은 그 어떤 당파성에도 휘말리지 않고 오직 사실에 입각해 기록했다. 이같은 과학과 사실 때문에 그는 연전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글을 쓰기가 어렵고, 신문과 저널을 읽기가 고통스럽다”며 “우리 사회의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한다”며 “이는 당파성에 매몰돼 자신의 의견을 정의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단절과 장벽만이 쌓인다”며 “결국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말과 주장은 남의 말과 주장에 의해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이 허약함이야말로 인간의 말이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힘이다. 절대 부서질 수 없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무기”라며 “우리 사회에서는 언어가 점점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단절만 쌓이게 할 뿐이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최현미기자